美 대선 개표 중반 증시 급락, 하루만에 회복… 트럼프 공약 구체화 예측 못해 냉정한 판단 필요
초반 긴장감 조성에 성공한 공포영화는 귀신 혹은 괴물의 실체가 밝혀진 후반부부터 시들해지면서 흥행에 실패하는 방정식을 종종 볼 수 있다. 상상력을 자극해 공포심을 극대화하던 귀신도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싱거워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반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귀신의 힘이 없어지지는 않으니 결국 시각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주 전 세계의 관심 속에 진행된 미국 대선에서 모두가 두려워했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다. 트럼프 당선 시나리오는 아마도 선거 당일까지 실체를 드러내기 전 귀신이 아닐까 싶다. 정부도 전문가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낙관했었던 데다 가능성 있는 최악의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던 심리도 컸을지 모른다. 겉으로 트럼프 당선 시나리오에도 대비할 것을 외쳤지만 전혀 준비가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 당선 직후 우리나라 증시는 충격의 오후를 맞이했다. 여의도 증권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트럼프 당선이 가시화하던 9일 점심시간 여의도 식당가. 하나둘 올라오는 속보에 식사를 먹는둥 마는둥 허겁지겁 직장으로 돌아가던 증권업계 종사자들은 서로의 민망한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충격은 다음날 반전으로 계속됐다. 증시가 급락 하루 만에 빠른 회복세를 보인 것이다. 국내 경제 펀더멘털의 양호함, 미국 시스템에 대한 신뢰, 여기에 선거운동 당시 트럼프 발언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일 뿐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뒤늦은 분석자료들이 쏟아졌다. 트럼프 당선을 미리 점치고 주가가 하락할 때 수익을 내는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해 대박을 낸 투자자가 매도 시점을 놓치고 하루 만에 한숨을 내쉬는 등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초 평가 기준으로 강조했던 실적이나 펀더멘털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울분을 토하는 투자자도 있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는 마당에 도덕 교과서를 읽으라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직전까지 최순실 사태에 휘둘리다 이제 미국 정치권 이슈에 흔들리는 상황이 좌절감을 안긴 모습이다.
이 같은 경험은 대형 이슈에 과도한 반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교훈을 남겼다. 문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란 현실에서 오는 진정한 ‘쇼크’가 당선 자체의 충격이 가시고 난 지금부터라는 것이다. 국내 증시는 이제 선거 공약의 구체화에 예측이 엇갈리면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본격적으로 트럼프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냉정한 상황 판단과 연구, 그리고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