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화장실은 가장 피하고 싶은 곳 1위예요.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묻지마 범죄'의 표적이 될까 무서워서 혼자 못 가요. 또 벽이나 문에 '몰카' 설치돼 있을까 봐 휴지를 챙겨가서 돌돌 말아서 온갖 구멍을 막죠."
지난 2016년 5월 17일 서울 최대 번화가인 강남역 인근의 한 노래방 공중화장실에서 20대 초반 여성을 표적으로 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이 "여성을 기다렸다가 범행했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성 안전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했다.
강남역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묻지마 범죄'로 보이지만, 범인이 피해망상을 갖고 손상된 자존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대상으로 여성을 규정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혐오범죄로 분석되고 있다.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불쾌한 감정과 증오들을 표출하는 혐오 범죄는 강남역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1명의 희생자를 낸 유영철 사건, 2006년 4월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발생한 강호순 사건 등도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사건들의 범인들은 범행 동기로 여성에 대한 증오와 사회적인 편견을 댔다.
강남역 시간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지금, 여성을 노린 강력범죄는 줄었을까. 지난 5월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이 피해자였던 강력범죄(살인·성폭력)는 총 3만270건으로, 2016년 2만7431건보다 10%가량 늘어났다.
많은 이들이 혐오 범죄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촉발됐다고 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문제의식 없어 내뱉은 혐오 표현들이 감정 표현으로 터지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간베스트(일베)'에서는 여성과 장애인, 이주민, 성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표현을 일삼고, '워마드'에서는 모든 남성을 하나로 보고, 상대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 감정을 매개체로 이용자들은 똘똘 뭉친다. "재기해야 한다", "죽여버리고 싶다", "칼 들고 나왔다"와 같이 일상생활에서는 입에 뱉지 못할 표현들을 서슴없이 내뱉으면서 사회적 불안을 조성한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의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관련 규제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18일 이투데이와 통화에서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자, 약자, 난민들에 대해 편견과 혐오가 존재하는데, 온라인상에서는 익명성을 무기로 훨씬 더 극단적인 표현들이 보인다"며 "온라인이 위험한 공간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안으로 혐오표현 지침을 내놓겠다고 했다. 함 교수는 "온라인 하고 오프라인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성향의 행동들에 대해서는 오프라인 쪽에서도 건전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절한 규제를 해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되, 파괴적이고 범죄적인 결과를 낳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이들의 거친 표현들은 명예훼손이나 모욕, 협박으로 이어져 법정 공방까지 가는 사례도 종종 있다. 갈등을 낳고 범죄의 원인이 되는 혐오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법률사무소승백 대표 유승백 변호사는 "온라인상의 게시글이나 댓글들에 대해 모욕죄나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죄의 고소가 늘어나고 있다"며 "심각한 경우에는 협박죄는 물론이고 실제 오프라인으로 심각한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남충', '최순실 같다'라는 표현이 모욕에 해당한다는 형사 판결이 있었다. 온라인상 모욕과 명예훼손의 경우 불특정 다수로부터 공격을 당한다는 점과 해당 내용이 계속해서 온라인상에 기록된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의 정신적 충격은 더욱 커진다.
유 변호사는 "혐오범죄에 대한 사회적 자정 활동 및 구체적인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며 "각종 온라인 사이트 운영 주체의 협조와 외국 서버의 경우 외국수사기관과의 공조 역시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