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석 삼성물산 상품디자인그룹장, 고객 의견 중시…에어커튼시스템·양념냉장고 구현
삼성물산은 2000년 1월 주거브랜드 ‘래미안(來美安)’을 선보였다.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래미안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래미안의 상품 기획을 도맡는 김명석 삼성물산 상품디자인그룹장(상무)은 개인화 성향이 짙어지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또 다른 시도를 준비 중이다. 지난 7일 강동구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김 상무는 내년에 옵션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택 폭을 넓힐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공간의 재탄생을 일컫는 ‘카멜레존(카멜레온 ‘Chameleon’ + 존 ‘Zone’의 합성어)’이 올 한해 화두였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개인의 취향이 중시되는 분위기가 퍼졌다. 김 상무 역시 소비자들이 자신의 취향대로 주거공간을 꾸밀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김 상무는 “지금은 하드웨어 싸움이다. 가변성도 갖춰야 하고, 자재, 가전, 조명 등을 기호에 맞춰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래미안이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방을 (기본형보다)더 크게 한다든지 마루의 색깔을 다르게 한다든지, 또 조명, 가전도 지금보다 더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부분도 해당한다”면서 “현재 획일적으로 공급하는 분위기에서는 고객이 선택하는 느낌이 별로 없다. 옵션의 폭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상무는 ‘답은 고객에게 있다’는 원칙을 중시한다. 사무실에서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선 현장에서 소비자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부서 내 디자이너들에게 완공된 아파트에 직접 찾아갈 것을 주문한 것도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이 방법을 통해 새로운 아이템을 구현하기도 했다. 최근 분양한 ‘래미안 리더스원’에 적용한 ‘양념냉장고’가 그것이다.
그는 “3~4년 전부터 디자이너가 직접 완공된 단지에 간다"면서 "10가구를 예약하고 방문해 어떻게 사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양념을 보관할 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와 쌀냉장고 모드 기술을 가진 협력사와 협업해 양념냉장고를 제품화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자녀방에 드레스 공간을 구현한 것도 역시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김 상무는 “주부자문단이 욕실 때문에 아침에 전쟁이라는 의견을 내더라. 요새 애들이 화장도 할 수 있는 일정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며 “의견을 받고 래미안 리더스원에 반영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주부자문단을 1998년부터 운영 중이다.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연령대, 가족구성, 거주지역 등을 안배해 구성하고 있다.
계열사 간 협업도 끊임없이 추구한다. 최근 운니동 래미안갤러리에 개관한 ‘그린 에너지 홈랩’에서 선보인 일부 기술은 계열사와 협업한 결과물이다. 세균곰팡이 등의 원인물질을 제거하는 기술인 ‘SPI’(Samsung Super Plasma Ion)는 삼성전자가 약 10년 전에 이미 상용화한 기술이다.
김 상무는 “반도체 공장을 가면 클린룸이라고 있는데 사람이 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라면 집에 적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 의견을 응용해 현관에 사람이 들어올 때 공기를 분사해 옷에 붙은 먼지와 세균을 털어주는 에어커튼 시스템을 구현했다.
김 상무는 내년이 아니라 더 멀리 내다본다고 했다. 아파트는 분양하고 2~3년 후에 입주한다. 입주민 입장에서는 3년 전 트렌드에 입주하는 것이다.
그는 “고객은 선택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3년 후 제품을 인도하는 불만을 극복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고객들은 예전과 다른 눈높이, 다른 상품을 원한다. 자기만의 것, 단지만의 것을 강조하는 것을 잘 충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의지가 엿보인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