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ㆍ맥주 출고가 인상이 개정안 추진 발목 잡았다는 분석 속 수제맥주업계 강하게 반발
기획재정부가 50년 묵은 주류세 개편 시기를 또다시 미루면서 주종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기재부는 현행 ‘종가세’ 대신 ‘종량세’로 바꾸는 것을 주세법 개정의 골자로 정했지만 맥주에 이어 소주까지 출고가가 인상되면서 개정 시기를 연기한 상태다.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기존의 종가세를 종량세로 전환하는 안에 대해 주류업계 내에서 일부 이견이 있어 합의에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사실상 주세법 개정안의 연기를 시사했다. 종량세는 알코올 함량이나 술의 부피, 용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으로 선진국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과세체계다. 김 실장은 “주세개편으로 인해 소주, 맥주 가격인상에 대한 국민적 오해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 가격변동은 없다는 기본원칙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주요 소주, 맥주 가격이 인상된 점이 개편안 발표 연기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주의 경우 이달부터 식당이나 주점에서 1병 5000원 시대가 도래했다.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 1위 브랜드인 참이슬이 5월 1일부터 공장 출고 가격을 6.45% 인상함으로써 병당 1015.7원에서 1081.2원으로 65.5원 가량 올랐다. 원부자재가격, 제조경비, 유통비용 증가 등 원가 상승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게 업체 측 설명이지만, 주세 개편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값을 올렸다는 합리적인 의심도 제기된다. 2~3위 업체들이 선두 기업을 따라 가격을 인상하려는 조짐도 주세법 개편 연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주류업계 내 소주와 맥주, 전통주까지 다양한 주종 간 이해관계가 ‘백가쟁명’식으로 제각각이다 보니 기재부가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 주세법 개정을 미루고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종량세가 도입되면 국산 맥주와 위스키, 화요, 안동소주, 고급 와인 등에 붙는 세금은 줄어드는 반면, 수입 맥주, 소주, 복분자주 등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설사 기재부가 개정안을 매듭짓는다 해도 국회 통과까지 험로가 예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류세 개편을 강하게 요구했던 수제맥주협회는 “주세법 개정안 발표가 6개월 사이 3번이나 지연돼 정부의 경제 활성화 의지가 의심된다”며 “4조 원이 넘는 맥주 시장의 존폐가 달린 사안이 표류 중”이라고 성토했다. 수제맥주업계에서는 이미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경쟁력을 잃었는데 주류세 개편이 계속 미뤄지면 수제맥주업체들이 줄도산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국산 맥주업체라 해도 모두 종량세 전환에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다. 맥주만 생산하는 오비맥주(카스)의 경우 종량세 도입에 환영하고 있지만 소주와 맥주를 동시에 보유한 하이트진로(참이슬, 하이트)나 롯데주류(처음처럼, 클라우드)는 이렇다할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처지다.
이미 소주와 맥주 1위업체가 출고가격을 인상했지만 주세 개편 이후 추가 인상 가능성도 있어 소비자 물가 부담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병, 캔 맥주의 경우에도 현행 종가세 체계보다 가격이 저렴해지는데 비해 생맥주 가격은 오히려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종량세로 주세를 개편하면 생맥주에 부과되는 세금은 최대 60% 상승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소주 업계 역시 알코올도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면 상대적으로 소주 체감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다. 업계 관계자는 “주력 제품에 따라 입장 차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