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속칭 ‘청량리 588’이라고 불리는 청량리 4구역은 집회가 예정돼 있었지만, 적막감만 맴돌았다. 청량리 4구역 연합비상대책위원회(연합비대위) 회원 8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농성 중인 2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식료품을 공급받는 사람만 바삐 움직였다.
앞서 23일 건물 옥상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로 회원 한 사람이 생사를 넘나들고 있어 모두 그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연합비대위는 1년 8개월 전부터 농성을 시작했다. 문제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올 1월부터 5명이 옥상에 올라 쇠사슬을 목에 감았다. 일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다가 3명이 건강상의 문제로 내려왔고, 또 다른 1명은 폭발 사고로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들이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는 이유는 2가지다. 하나는 ‘조직폭력배 처벌’이고 다른 하나는 ‘추가 보상금’이다. 정춘도 연합비대위원장은 “저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수년간 조폭들에게 갈취와 폭행을 당한 사람들”이라면서 “조폭들이 보상금을 배분하는 과정에도 개입해 제 몫을 받지도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40~50년 동안 청량리에 살았지만, 돈을 못 받은 사람도 있다. 고작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받은 건 말이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청량리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위원회(추진위원회)와 시공사인 롯데건설이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추진위원회는 ‘할 만큼 했다’라는 입장이다. 추가 보상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불법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거나 이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라 법적 대상자가 아닌데도 도의상 소액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이날 이투데이와 만난 임병억 추진위원장은 “규정에 따라 지급해야 할 대상에게는 상응한 보상금이 지급됐다”라면서 “재개발 추진과정에서 보상금을 한 푼도 못 받은 사람은 10명 미만인데다 추가 보상금을 지급했다간 배임 혐의를 받을 수도 있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좁힐 수 없는 양측의 틈새에는 ‘조폭’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두목인 김모 씨는 과거부터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했고, 재개발이 추진되자 회사를 세워 공동시행사를 맡았다는 것. 보상금을 배분하는 역할도 그에게 돌아갔다는 주장이다. 처음에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간주했고, 당시에는 세입자들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처음에는 제대로 일을 하는 것 같았지만, 보상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 세입자에게 소액을 쥐여주고 ‘나중에 추가로 보상금을 주겠다’라고 했지만, 재개발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도 이행치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금품갈취와 금품수수로 징역 3년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폭력ㆍ공갈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청량리 주변 상인들과 주민의 심경은 복잡하기만 하다. 길거리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는 “성매매라는 불법적인 일을 한 사람들에게 추가 보상금이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삶의 터전이나 생계를 위협받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