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운행 중 화장실을 이용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무단횡단을 해 교통사고로 사망한 기사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박성규 부장판사)는 최근 A 씨의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 씨는 도로변에 택시를 주차한 후 왕복 4차로 도로를 건너 화장실을 다녀오다 버스와 충돌해 뇌출혈로 사망했다. 양쪽 도로변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이 다수 있었고, 사고 장소로부터 횡단보도는 좌우로 각각 80m, 56m 지점에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A 씨의 아내는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이 A 씨가 어떤 이유로 도로를 무단횡단했는지 명확한 증거자료가 없고, 택시 업무에 관한 사고가 아니라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사적 행위에 의한 교통사고라며 지급을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재해 발생 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간접적인 사실관계 등에 따라 경험법칙상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추론으로 업무 기인성을 추정할 수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며 "A 씨는 택시 운행 업무를 수행하던 중 화장실을 이용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A 씨가 소속된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사고경위서에 '개인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시장에 갔다'고 기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교대시간까지 2시간 남은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물품을 구매하러 시장에 들렀을 것으로 추론하기 어렵다"며 "A 씨는 신용카드 1장만을 사용했는데 결제된 내역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A 씨가 시장에 들어갔다가 나와 사고가 발생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이 약 5~7분에 불과해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라며 "무단횡단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고의 자해 행위나 범죄 행위라거나 업무에 수반되는 행위의 범위를 벗어난 사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