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 대책 이후 약 한달간 강남 아파트 경매물건 8건 중 7건 낙찰, 낙찰가율 105%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의 법원경매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12ㆍ16 대책 효과에 강남권 일부 고가 아파트 호가(부르는 값)가 수억 원씩 내려앉으며 얼어붙는 와중에도 감정가 20억 원을 넘는 고가 경매 아파트는 오히려 웃돈이 얹어져 팔려 나가고 있다. 대출에 의존하지 않는 현금부자들의 경매시장 진입이 되레 더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추가 대책을 시사했지만 공급 부족론으로 인한 아파트 희소성과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에 힘입어 고가 아파트 경매시장은 부동산 대책의 영향권 밖에서 동떨어진 흐름을 보일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8일 지지옥션에 따르면 12ㆍ16 대책 이후 전날까지 약 한 달 동안 법원경매에서 강남3구(강남ㆍ서초ㆍ송파구) 아파트 8건이 경매로 나와 7건이 주인을 찾았다. 이 기간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105%에 달한다.
이 중 대책 직후인 12월 16~31일 보름 새 나온 5건의 경매물건은 유찰없이 전량 낙찰됐다. 낙찰가율은 102.3%였다.
대책 직후 보름간의 낙찰가율은 대책 직전(12월1~15일) 낙찰가율(107.2%)보다 수치상으로는 하락했다. 그러나 경매물건의 총 낙찰가가 직전(36억2395만 원)의 2배를 넘는 87억7315만 원에 달한다. 물건당 몸값이 너무 크다 보니 낙찰가율이 크게 높아지긴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된다. 평균 응찰자가 대책 전후 모두 3명 수준인 점을 봐도 부동산 대책으로 인한 영향이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5건의 물건 중 무려 3건이 15억 원을 넘는 고가 아파트였음에도 이들 물건은 첫 경매에서 유찰없이 모두 한 번에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율은 모두 100%를 넘어섰다.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 전용165㎡가 감정가(25억4000만 원)보다 7000만 원가량 높은 26억1600만 원에 팔렸다. 낙찰가율은 103%다. 강남구 개포동 경남아파트 전용 182㎡는 감정가(23억4000만 원)보다 높은 23억7500만 원에, 송파구 잠실동 엘스아파트 84㎡는 감정가(17억 원)보다 1억 원 이상 높은 18억1799만 원에 낙찰됐다. 두 물건의 낙찰가율은 각각 101%, 107%였다. 강남 아파트 청약시장처럼 이 일대 경매 물건도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명원 지지옥션 연구원은 “감정가 10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가져가는 낙찰자가 경매 대출(경락잔금대출)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금융권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현금력이 탄탄한 투자가들이라는 것”이라며 “잇따른 고가 낙찰에서 보듯 현금부자들은 대책의 강도가 아무리 세도 이와 상관없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달 초 경매물건으로 나온 감정가 7억1300원짜리 서초구 서초동 현대4차 아파트 전용 52㎡는 9억6880만 원으로 낙찰가가 불어났다. 낙찰가율은 무려 136%까지 치솟았다. 응찰자는 10명에 달했다.
현금부자들의 그들만의 리그는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공급 부족으로 아파트 희소성이 갈수록 커지는 데다 넘쳐나는 시중의 유동성이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다만 3월부터 주택 매수자가 제출하는 자금조달계획서가 더 깐깐해지고 투기과열지구에서 9억 원이 넘는 집을 살 때 매수자가 자금조달계획서 내용을 입증하기 위해 내야 하는 증빙서류가 15종에 달하게 되는 부분은 변수가 될 가능성있다. 경매 낙찰자도 증빙서류 제출이 의무화될 경우 경매시장 진입을 포기하는 자산가들이 속출할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낮은 가격대에 나오는 강남권 아파트엔 실수요자들의 움직임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12ㆍ16 대책에서 시가 9억 원 아래 주택에 대한 대출 규모를 40%로 유지했지만 이 대책으로 실수요가 몰리면서 집주인들이 호가를 높여 부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그동안 저평가를 받아온 지역과 단지를 중심으로 과도한 갭 메우기가 발생하는 이유다. 경매물건은 거품없이 시세보다 낮게 사들일 수 있고, 한 차례라도 유찰되면 감정가가 더 낮아져 진입장벽이 그만큼 낮아진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청약 당첨가점이 치솟으면서 청약시장 진입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진 것도 30대들의 경매시장 진입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오 연구원은 “서울 아파트 공급 축소 전망에 희소성은 점점 높아지는데 매매시장은 매물 잠김으로 가격이 여전히 상승하고 있다”면서 “경매물건이 증가 추세인 데다 경매시장은 정부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탈출구라는 인식이 커져 올해 아파트 경매 경쟁률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