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설립 못한 서울 정비구역 102곳 후보로…공공임대 확대엔 '난색'
국토교통부가 서울 주택 공급 카드로 '공공 재개발'을 꺼내 들었다. 사업이 지지부진한 재개발 지역에 공기업이 시행자로 들어가 주택 공급을 주도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정비업계에선 사업성 확보 방안이 부족하다며 외면하는 분위기다.
국토부는 6일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공공 재개발 활성화로 서울지역에 2022년까지 2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주택 공급 정책 6가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공공 재개발 활성화가 이번 공급 정책 성패를 좌우하는 키가 될 것이란 의미다.
공공 재개발 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기업이 단독ㆍ공동 시행자로 참여하는 재개발 사업을 말한다. 국토부는 공공 재개발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당 사업장을 '주택 공급 활성화지구'로 지정해 집중 지원키로 했다. 우선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성과를 살펴본 뒤 수도권 다른 지역이나 지방 광역시 등으로 공공 재개발을 확대해 나간다는 게 국토부 구상이다.
주택 공급 활성화지구로 지정되면 용도지역 종(種) 상향ㆍ용적률 인상 혜택을 받고 분양가 상한제도 적용받지 않는다. 통상 10년가량 걸리는 각종 인허가 기간도 5년으로 줄어든다. 중도금, 이주비 마련을 위한 금융 부담도 완화된다.
혜택을 받는 만큼 공공 재개발 사업장에 져야 하는 의무도 무겁다.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주택 공급량 가운데 절반을 공공임대주택이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내놔야 한다. 일반분양 주택에도 의무 실거주 기간은 최대 5년, 전매 제한 기간은 최대 10년으로 연장된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이르면 오는 9월 공공 재개발을 위한 시범사업장을 선정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마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한 곳 가운데서 선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비구역 지정 등에 필요한 행정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택 노후도ㆍ밀도 등 개발 필요성이 이미 입증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등은 현재 재개발ㆍ도시환경정비사업을 위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357곳 가운데 102곳이 구역 지정 후 10년 넘게 조합을 출범시키지 못한 것으로 파악한다. 정비예정구역 등을 합치면 후보지는 110곳까지 늘어날 수 있다.
이 가운데는 재개발 '블루칩'으로 꼽히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도심 노른자 땅 재개발로 주목받은 중구 산림동 '세운5구역'이 대표적이다. 세운5구역은 1038가구 공급을 목표로 2006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지만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 논란과 사업지 축소가 반복되면서 개발이 계속 지연됐다. 흑석2구역도 2008년 정비구역 지정 후 토지 소유주 간 갈등 등으로 조합 설립을 못 하고 있지만, 개발만 되면 한강 조망권을 갖춘 흑석뉴타운 알짜 단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주민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다. 정비업계에선 정부가 정비사업 활성화 기조를 밝힌 것은 환영하면서도 임대주택 확대 의무엔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모 등 여러 시범사업 추진 방식을 고민하고 있지만 주민 동의율을 채우는 게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북구 A구역 추진위 관계자는 "정책을 전환한 것 자체는 잘한 것"이라면서도 "임대주택 비율을 높이겠다는 건 주민 피해를 대가로 나라나 시에서 집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공공 재개발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 "우리 같이 사업 진행이 잘 되는 곳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종로구 B구역 추진위 관계자도 "용적률을 높여주고 이익을 보장해준다는 건 긍정적으로 봐야 하지만 임대아파트 확대는 또 다르게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조금 더 공공 재개발 계획이 구체화하고 조합 설립 작업이 진전되면 그 때 참여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최진도 국토연구원 연구원은 "정비사업 내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공공 재개발 확대 정책은 시의적절하다"면서도 "공공성과 사업성 간 균형을 맞출 세부적인 법적 제도, 금융 지원 방안이 추가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