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은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서열을 뒤바꿨다. 제조업 중심의 구(舊)경제에서 디지털 중심의 신(新)경제로의 전환이 코로나를 계기로 빨라지면서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의 몸값이 치솟았다. 또 코로나를 막아설 해결사로 바이오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고, 환경오염 해결에 관한 관심 증가로 전기차 등 친환경차 산업에 대한 투자심리도 높아졌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서열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이른바 ‘BBIG’(바이오ㆍ배터리ㆍ인터넷ㆍ게임) 주도주들이 나타나 기존 제조업 중심 시총 상위 기업들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특히 ‘BBIG7’의 일원인 삼성바이오로직스ㆍ셀트리온(바이오), LG화학ㆍ삼성SDI(배터리), 네이버ㆍ카카오(인터넷), 엔씨소프트(게임)의 상승세가 돋보였다.
지난해 말 코스피200 시총 서열 10위에 들던 현대모비스, 포스코, 삼성물산 등은 아래로 밀려났고 카카오, 삼성SDI 등이 각각 13계단, 11계단 치고 올라와 시총 10위에 진입했다.
7일 시총 서열 3위까지 올라선 LG화학은 부동의 2위인 SK하이닉스의 89.7% 수준으로 시총이 늘었다. 지난해 연말 시총 3위였던 네이버는 하이닉스 시총의 절반에 못 미치다 현재 88%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렇게 코스피200 전체 종목 중 BBIG7이 차지하는 시총 비중은 지난해 말 11.5%에서 현재 20.4%로 불었다. 이러한 주도주 쏠림은 글로벌 증시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글로벌 주식시장의 중심지인 뉴욕도 마찬가지다. 미 증시 시총 1~4위인 ‘MAGA’(마이크로소프트ㆍ아마존ㆍ구글ㆍ애플)는 7일 기준 작년 말 대비 시총이 40.7% 불어난 6조1159억 달러(약 7272조8754억 원)를 기록했다. 이 기간 S&P500 지수가 3.7%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성장세다. 세계 디지털 혁신의 선봉에 설 ‘IT 공룡’들이 코로나 국면서 차별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특히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끌며 지난달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기업 시총 1위에 올라섰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 130여 년간 내연기관에 머물다가 전기차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일본에서는 스마트 팩토리ㆍ제약ㆍ게임 기업의 시총 순위가 높아졌다. 제약회사인 주가이제약과 다케다약품공업은 작년 말 들지 못했던 시총 10위권(토픽스 기준)에 진입했다. 스마트 팩토리 기업인 키엔스는 언택트(Untacㆍ비대면) 수혜 종목으로 부각되며 지난해 말 6위서 4위로 올라섰다. 게임기를 판매하는 소니는 이 기간 5위서 3위가 됐다.
‘원자재의 나라’ 캐나다는 시장 내 지형 변화가 극적이다. 지난해 말까지 시총 순위 10위였던 온라인 플랫폼 업체인 쇼피파이가 로열 뱅크 오브 캐나다를 단숨에 제치고 시총 1등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금융 및 오일 메이저 기업이 포진한 영국은 독보적인 시총 1위였던 HSBC가 3위로 하락했다. 그 자리를 코로나 백신 개발 선두 주자인 아스트라제네카가 올라섰고, 2위 또한 제약업체인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이 차지했다. 또 독일도 전통적인 하드웨어 기업은 후퇴하고 기업용 소프트웨어 강자인 SAP가 시총 1등 자리를 굳히는 추세다.
증권가에서는 코로나19 충격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를 증폭시켰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산업구조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고, 시장은 이를 미리 앞서 주가에 반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경기침체와 같은 산업 구조의 변화에 직면했을 경우 기술 침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속화된다”며 “경제 충격이 전통산업보다 새로운 산업(성장 산업)을 더 빠르게 흡수하는 방향으로 귀결된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술’이라는 추세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시장을 설명하는 핵심 변수”라며 “코로나19는 새로운 산업의 탄생이 아닌 기존 성장산업을 가속한 계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