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에 접속하니 12평 규모의 서울의 한 패션숍이 손안에 쏙 들어온다. 손가락 하나로 매장을 둘러보고, 확대하거나 뒤집으면 구석구석 살필 수 있다. 옷가지, 액세서리 등 위에 떠 있는 동그라미를 누르면 자세한 정보와 함께 바로 살 수 있도록 웹 쇼핑몰로 연결된다. 그야말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방구석 쇼핑’이다. 최근 한 패션업체가 도입한 ‘가상 매장’ 이야기다.
기술과 패션이 만났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맞춤형 패션을 제안하는 것을 넘어서 가상현실(VR) 기술로 실제 매장을 통째로 모바일로 옮기는 등 패션업계에서도 AI·VR 기술 열풍이 거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이후 언택트 트렌드에 힘입어 기술과 패션의 만남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최근 폴스미스(신세계 본점 매장), 어그(신세계 광주점 매장), 리스(신세계 강남점 매장), 맨온더분(신세계 강남점 매장) 등 4개 브랜드에 대해 3D 공간 스캐닝 기술을 활용한 가상매장을 오픈했다. 한 매장당 10개 품목에 대해 상세정보 확인과 구매를 할 수 있는 자사몰로 이동하는 '포인트'를 설정했다. 새로운 프로모션이 시작되거나, 브랜드별로 주력 상품이 변경될 때마다 제품 포인트를 바꿀 수 있다.
코오롱FnC의 '럭키마르쉐'는 360도 VR 기술을 활용한 가상 매장 '럭키 고 스마일 마켓'을 오픈했다. 서울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있는 럭키 마르쉐 매장을 구현한 곳으로 코오롱FnC 공식 온라인몰인 코오롱몰에서 접속할 수 있다. 럭키마르쉐 코엑스몰점에 구비된 전체 상품의 70%를 가상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삼성물산의 SSF샵도 최근 AI 기술을 개선해 맞춤형 패션 서비스를 강화했다. 과거 즐겨보거나 샀던 상품과 유사한 사례를 AI가 조합해 고객들에게 맞춤형으로 관련 상품을 리스트업해 준다.
이 같은 노력은 실제 매출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3D 가상매장 개장 후 2주 간(10월12~25일) 4개 브랜드의 3D 매장에 노출된 38개 제품의 온라인 매출이 전월 동기 대비 44% 증가했다. SSF샵의 경우 올해 1월부터 이달 둘째 주까지 누적매출량이 지난해 동기보다 20% 가까이 올랐고, 고객 유입률도 40% 정도 늘었다.
업계가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건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드라이브'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들은 가격이 가장 낮은 최저가를 검색해 제품을 구매하기보다 얼마나 특별한 쇼핑경험을 제공하는지 등 경험을 바탕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크다”라면서 "가상매장은 오프라인 매장의 경험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만 가능한 다양한 브랜드의 콘텐츠까지 함께 제공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패션쇼핑과 기술의 만남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 아마존이 '알렉사'를 앞세워 선보인 '매직 미러'가 대표 사례다. 가령 "내일 저녁에 필요한 정장 추천해줘"라고 요청하면 매직 미러에 탑재된 AI 기술인 알렉사가 정장을 맞춤으로 추천해준다. '이 정장은 85% 어울린다', '95% 정도 어울린다' 등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확률로 알려줘 소위 '버츄얼 피팅'(Virtual Fitting)까지 가능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크로 타깃팅이 중요해지면서 사람이 분류하지 못하던 걸 기술이 다 분류해내는 '백인백색'의 시대"라면서 "전통 매장들도 물류센터를 강화하거나 무인점포로 바꾸는 등 결국에는 기술을 접목한 매장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