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역 일대 준공업지역 개발사업이 든든한 뒷배를 얻었다. 개발 아이디어를 낸 한 축인 변창흠 전(前)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되면서다. 다른 서울 시내 준공업지역 개발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방향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LH는 지난주 '산업 혁신 거점 조성 및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준공업 지역 활용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영등포역 일대 공공재개발 방향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LH는 용역을 발주하며 중점적으로 사업 모델을 개발할 지역으로 경인로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지역 내 준공업지역과 상업지역을 명시했다. 문래동에서 영등포구에 이르는 경인로 변은 대부분 준공업지역과 상업지역으로 이뤄졌다. 특히 문래동엔 철공소 등 소규모 경공업 업체가 밀집해 있다.
영등포역 일대 개발은 변 후보자가 LH 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추진하던 과제다. 준공업지역 개발 방안을 고심하던 박원순 전(前) 서울시장이 변 사장에게 LH 주도 개발을 제안했다. 영등포구가 서울 시내 자치구 중 준공업지역 면적(50만㎡)이 가장 넓기 때문이다. 변 후보자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사업화를 위한 물밑 움직임이 시작됐다. LH는 올 여름부터 경인로 일대 개발 검토에 본격 나섰다.
이번 용역에서 LH는 영등포역 일대에 주택과 산업시설을 짓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LH 측은 "아직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하지만 연구 용역이 끝나는 내년 초엔 개발 구상이 명확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LH가 준공업지역 공공재개발에 나서면 영등포역 일대 개발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현재 서울시는 도시재생지역에서 공공재개발을 불허하고 있지만 공기업 스스로 이 같은 규제를 허물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변 후보자 장관 취임 땐 탄력
LH가 개발을 추진 중인 준공업지역은 영등포역 일대가 처음은 아니다. 이와는 별도로 서울 금천구 가산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주변 준공업지역에서도 연구 용역을 통해 사업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LH는 추가 사업지 발굴도 준비 중이다. 필요하면 LH가 준공업지역 토지를 매입해 직접 개발하는 방안도 열어두고 있다.
변 후보자와 LH가 이처럼 준공업지역 개발에 의욕을 보이는 건 중앙정부도 준공업지역을 활용한 주택 공급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준공업지역 내 공장 이전 지역에 주택 단지와 주거-산업 복합건물을 짓는 순환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변 후보자가 장관에 취임하면 이 같은 정책 기조는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변 후보자는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서울 도심 주택 공급 방안을 언급하며 "서울시 준공업지역은 분당신도시와 비슷한 20㎢ 규모이며 4차 산업으로의 전환에 맞춰 혁신공간과 함께 주택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발업계에선 정부에서 의지를 갖고 규제만 완화하면 준공업지역 개발은 시간 문제라고 본다. 산업화 시대 형성된 서울 시내 준공업지역은 용적률이 높은 데다 도심과 가까운 곳이 많기 때문이다.
난관도 적지 않다. 사업 속도부터 문제다. 국토부는 올해 준공업 순환정비 후보지를 3~4곳 발굴하려 했으나 이제야 공모를 준비 중이다. 사실상 내년으로 사업이 미뤄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사업이 느려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업지 확보는 더 큰 난제다. LH는 과거에도 구로구에서 준공업지역 개발을 추진했으나 복잡한 권리관계와 사업성 부족 등으로 중도에 포기했다.
정치적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다. 준공업지역 개발에 필요한 핵심인 규제 권한을 지방자치단체가 쥐고 있는 만큼 서울시와 국토부-LH가 줄다리기가 이어질 수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도심 노후 준공업지역은 산업적 역할이 떨어지고 주거 여건도 열악한 경우가 많다"며 "도시 환경적인 측면에서 존치보다는 주거용으로 용도를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