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가 5월 3일부터 대형주 위주로 부분 재개하는 데에 후폭풍이 거세다. 개인투자자들과 정치권에서는 3개월 연장도 아닌 7주의 기간은 '4월 선거용 대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부분 재개를 발표한 코스피200 지수, 코스닥150 지수 종목은 공매도 잔고에서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상 '전면 재개'라는 반발이다.
4일 오후 1시 50분 현재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55.33포인트(-1.77%) 떨어진 3074.35에 거래 중이다. 개인이 홀로 2조2209억 원 순매수하는 가운데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5416억 원, 1조6839억 원을 팔아치우고 있다. 현재 증시에서 대형주는 대부분 하락하고 있다.
공매도 금지 조치 연장 관련이 외국인과 기관의 수급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는 전날 제1차 임시회의를 열고 공매도 관련 논의한 결과 "국내 주식시장과 다른 국가의 공매도 재개 상황, 국내 증시의 국제적 위상 등을 고려하면 재개는 불가피하다"면서 "다만 전체 종목을 일시에 재개하기보다 부분적으로 재개해 연착륙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의 이러한 결정은 보궐선거 이후 사실상 공매도 전면 재개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금융위가 부분 재개를 허용한 종목들은 전체 시장이나 공매도 시장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금융위와 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200은 코스피 전체 종목 수(917개)의 22%지만 전체 시총(2060조 원)의 88%를 차지하고 있다. 코스닥150도 전체 종목 수(1470개)의 10%에 불과하지만 시총 비중은 전체(392조 원)의 50%다.
설태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공매도가 재개되는 종목은 약 350개이지만 시장 전체의 공매도 거래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90%"라며 "최근 60일간 공매도 거래대금에서 주요지수 구성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90.9%"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매도 잔고 상위 종목은 대부분 공매도 재개 대상이다. 코스피 공매도 잔고 비중 1위인 롯데관광개발부터 두산인프라코어, 셀트리온, 호텔신라 모두 공매도 부분 재개에 해단된다. 삼성중공업과 LG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공매도가 외국인에 편중돼 있어 개인에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개인의 공매도가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자금력 등의 차이로 실제 참여하는 개인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롯데관광개발은 영국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과 스위스 유비에스에이쥐가, 셀트리온은 메릴린치인터내셔날, 모간스탠리 인터내셔날 피엘씨가 대량 보유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이에 대해 '선거용 미봉책'이라며 대정부 투쟁을 예고한 상황이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대형 종목 공매도로 지수가 하락하면 지수연동 상품에 연계돼 여타 종목도 하락 태풍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공매도 세력이 계속 개인투자자 재산을 쉽게 가져가는 구도를 혁파하지 못하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공매도 세력이 개인투자자 대비 39배 수익을 챙기는 국민 피해에 대한 근본대책은 내놓지 않고 미봉책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라며 "코스피가 다시 2000대로 내려앉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대한민국 개인투자자들의 이름으로 금융위원장을 탄핵합니다'라는 청원이 새롭게 등장했다. 청원은 "은성위 금융위원장은 제대로된 시스템과 제도를 구현하지 않고 5월 2일까지 연장한다고 공표했다"며 "단지 개미투자자들이 아닌 4월 선거용으로 만든 허접 대책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정치권은 공매도 연장 자체에 초점을 두고 환영의 입장을 밝혔지만 공매도 부분 재개 시점이 4월 보궐선거 이후라 '선거용 대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물론 박용진ㆍ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전면에 나서 공매도 금지 연장을 주장했지만 이들은 "금융당국의 공매도 금지 연장 결정을 환영한다"는 밝혔다. 공매도 금지 연장을 결정하기 까지 여권의 입김이 거셌기에 개인투자자에겐 사실상 공매도 재개가 허탈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한 달 반 연장 결정 전에 개인에게 한없이 불리한 불공정한 공매도 시장 제도개선을 어떻게 언제 마무리를 하겠다는 것을 먼저 발표했어야 한다"며 "공매도 시장 공정성 회복이 먼저이지 여당의 보궐선거 전략이 우선시 돼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같은 여론을 예상한 듯 금융 유관기관들은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배포해 공매도 관련 오해 해소에 나서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공매도가 주가하락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검증된 바가 없다"며 "코로나19로 공매도를 금지하였던 국가의 공매도 금지기간 및 재개 이후 주가상승률과, 같은 기간 금지하지 않은 국가의 주가상승률 간에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공매도 투자자가 시장에서 과도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반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공매도 투자자도 손해를 볼 수 있다"며 "오히려 공매도의 이론상 손실범위는 무한대로, 손실이 투자원금으로 제한되는 일반적인 매수보다 위험이 더 큰 투자방식"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는 투자자가 불법공매도 주문을 제출해도 증권사는 이를 확인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증권사가 불법 공매도 주문을 받은 경우에는 불법공매도를 한 투자자와 동일하게 형사처벌 및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신설되어 관련 제재가 강화됐다"고 말했다.
코스콤은 외국인투자 관리시스템(FIMS)에서 다수의 주문거부가 발생한 것은 불법공매도 시도라는 주장에 대해 "외국인 투자관리시스템(FIMS)에서는 국가기간산업(전력산업, 항공산업, 통신산업 등) 종목에 대한 외국인의 취득한도를 엄격히 관리하기 위해 해당 종목은 각종 거래를 통해 취득한 주식이 본인 계좌에 들어온 이후에만 매도를 허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매도에 관한 부정적 여론과 시장에서 제기되어온 재개 필요성을 반영한 절충안이라고 본다"며 "공매도 제도와 관련한 여러 제도 개선 작업이 마무리되면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접근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