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법정 화폐” 강조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감축 협상을 주도했던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이 별세했다. 향년 100세.
7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슐츠 전 장관은 전날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캠퍼스 내 자택에서 사망했다. 원인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이자 미국의 싱크탱크인 후버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재직해왔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6년 이상 국무장관을 지낸 슐츠 전 장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수 국무장관으로 기록됐다. 리처드 닉슨 정부에서 노동장관과 재무장관, 예산관리국장도 역임했다. 1920년 뉴욕에서 태어난 슐츠 전 장관은 프린스턴대를 졸업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해병대에 입대해 장교 생활을 한 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스탠퍼드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그러던 중 1969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노동장관으로 지명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1987년 미국과 소련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체결을 주도한 것이다. INF는 당시 레이건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으로, 냉전 종식의 첫걸음이 된 핵 군축 조약이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과 소련은 사거리 500~5500km인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해 1991년 5월까지 2692기의 미사일을 폐기했다.
다만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시아가 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INF에서 탈퇴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유세 당시 “슐츠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외교 전문가”라며 “그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슐츠 전 장관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공동 성명을 내고 “우리는 어떠한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슐츠 전 장관은 신뢰에 대한 신념이 강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85년 레이건 전 대통령이 정보 유출을 막으려 수천 명의 공직자에게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도록 명령하자 “내가 이 정부에서 신뢰받지 못하는 순간이 내가 떠나는 날”이라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은 곧 관련 조치를 철회했다. 그는 “신뢰는 법정화폐”라며 “가정이든 학교든 국가든 신뢰가 있다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은 조지 슐츠의 사망으로 최고의 정치가 중 한 명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그는 “슐츠 전 장관은 깊은 지성과 재능,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었다”며 “그는 훌륭한 공직자였고 그의 헌신 덕분에 미국이 더 나은 국가가 됐다”고 고인을 기렸다.
후버연구소장인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은 “슐츠 전 장관은 모든 면에서 위대한 미국의 정치가이자 진정한 애국자”라며 “그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