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 참아왔던 아시안들의 외침이 미국 전역에 퍼지고 있습니다. ‘이민자의 나라’로 불리는 다인종 국가 미국에서 여전히 소외되고 차별받아온 아시아인들의 울부짖음인데요.
더는 이들이 참을 수 없었던 이유, 그 시발점은 3월 16일 벌어졌던 애틀랜타 총격 사건이었습니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8명이 사망하는 총격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용의자가 총기를 난사한 곳은 모두 아시아계 미국인이 운영하는 스파와 마사지 업소입니다. 피해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인이었고, 이 중 4명이 한인이었죠.
한인 피해자는 50대에서 70대의 중·노년층이었고, 유일한 한국 국적 희생자인 ‘현정 그랜트’는 스파에서 일하며 홀로 두 아들을 키워낸 싱글맘이었습니다.
아시안이 운영하고, 찾는 손님 또한 아시안이 많았던 곳. 노골적으로 특정된 3곳을 찾아 총기를 난사한 용의자는 21세 미국 백인 로버트 애론 롱입니다. 용의자는 범행 하루 전날 총기를 구매하고, 이런 끔찍한 일을 자행했죠.
그야말로 대놓고 ‘아시안’을 노린 용의자를 체포한 경찰은 사건 경위와 관련 “그에게 정말 나쁜 날이었다(a really bad day)”라는 말을 내뱉는데요.
성중독증 환자의 그저 나쁜 하루.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된 아시안들의 분노가 폭발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증오범죄’로 바라보지 않는 경찰을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아시아인들이 거리로 쏟아졌죠.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는 코로나19 시국 속에 더 선명해져 왔는데요. 코로나19가 아시아에서 시작됐다는 이유에서죠. 그들에게 닥친 불안을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로 받아치는 어리석은 생각이 가득해졌습니다.
평범하게 지나다니던 길거리에서 갑자기 무차별 폭행을 당하거나 흉기에 찔리는 사건. 지하철 안에서 기절할 정도의 폭행을 당해도 어느 한 사람 도와주는 이가 없는 현실. 오히려 가해자를 향한 환호성이 들려오는 끔찍한 상황. 이 모든 일의 피해자는 아시아인이었습니다.
차별과 괴롭힘을 넘어 경멸과 혐오까지 온 현재. 다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숨어있기만 하면 안 된다는 용기들이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뉴욕 곳곳에서 ‘Stop Asian Hate’(아시안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라는 팻말을 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아시아인,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한 마음으로 끔찍한 증오범죄를 규탄했죠.
바이든 미국 대통령 또한 “우리는 아시아계를 향한 폭력 증가에 침묵할 수 없다”며 “이런 공격은 잘못됐고 비미국적이며,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시민들도 이 운동에 동참했는데요. ‘#StopAsianHate’, ‘#StopAAPIHate’ 해시태그가 SNS를 뒤덮었죠. 평화시위 현장에 동참해 영상을 게재하고,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다양한 손길들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피해자인 ‘현정 그랜트’의 두 아들을 위한 펀딩 모금이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억울하게 희생된 어머니를 위한 장례식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던 아이들을 향한 온정이었습니다. 현재까지 290만 달러(약 32억 원)가 모여, 형제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게 됐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죠.
‘아시안 혐오범죄’ 규탄에 스타들도 함께했는데요. 한국계 미국인 가수 에릭남의 미국 타임지 기고문이 화제가 됐죠. 애틀랜타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에릭남은 지난달 16일 기고문을 통해 한국계 미국인이자 아시아·태평양계(AAPI)로서 겪는 차별 경험을 언급했습니다.
에릭남은 “검찰과 사법 당국이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규정할지 논쟁하는 동안, 나를 포함한 수백만 명의 아시아·태평양계 사람들은 버려진 기분을 느낀다”면서 “과거에 대한 기억, 우리가 처한 현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야 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호소했죠.
골든글로브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스타 산드라 오는 거리에 나와 확성기를 들었습니다. 산드라 오는 “우리는 처음으로 (아시안 증오범죄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과 분노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저는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목소리를 높였죠.
월드스타 방탄소년단(BTS)도 아시안 혐오 범죄를 “진심으로 분노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는데요. 지난달 30일 공식 트위터에 “아시안으로서 저희의 정체성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며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기까지, 저희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할지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인종 차별에 반대한다. 폭력에 반대한다”고 힘을 보탰죠.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김, 스티븐 연뿐만 아니라 귀네스 팰트로, 존 레전드, 저스틴 팀버레이크, 킴 카다시안, 리한나 등도 #StopAsianHate 게시글을 SNS에 올리며 뜻을 함께했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한 한인은 ‘아시안 차별’에 이렇게 하나 돼 목소리를 낸 것이 처음이라며 울먹였는데요. 차별에 익숙하고, 혐오에 그저 숨어버리는 나약했던 자신의 뒤늦은 용기에 미안해했죠. 또 마음속 이 뭉클함을 일상으로 만들겠다는 다짐도 함께했습니다.
“Stop Asian Hate! 아시안 혐오를 멈춰주세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위로하며, 모든 발걸음에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