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역량" 고강도 조치 예고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달라졌다.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놓고 무색무취였던 16년 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연일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고 후보자는 최근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가계부채) 정책 역량을 동원해 관리를 강화할 것”, “필요할 경우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활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정식 취임 전이지만 가계부채가 금융시장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는 만큼 시장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 후보자의 발언은 16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고 후보자는 2005년 금융감독위원회(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전신) 감독정책과장을 맡아 주택담보대출 리스크 관리 방안 대책을 만들었다. 동일차주의 투기지역 주택담보대출 취급 건수 제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제도 도입 등의 대책이 나왔을 때다.
당시 상황은 현재와 매우 유사하다. 부동산 시장은 과열됐고 가계대출은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005년의 고 후보자는 중도의 입장을 견지했다. 2005년 당시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방안을 놓고 첨예한 이견 대립을 보였다. “금융회사의 대출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과 “시장의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담당 과장의 의견이 중요한 시점에서 당시 ‘고승범 과장’은 어느 한쪽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청와대에서도 대출 중단을 주문한 시기였던 만큼 담당 과장의 결정에 모두가 주목했다. 고 후보자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보다 양쪽의 의견을 절충하는 쪽을 택했다.
당시 금융당국에서 일했던 관계자는 “2005년 금융위 내에서는 대출 중단과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서로 엇갈렸고, 금감원에서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은행들이 자본을 늘려 위험을 관리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고 후보자가 당시 중도를 택했던 것은 책임 부담이 컸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금융회사의 대출을 중단해도, 시장의 논리에 맡겨도 결국엔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6년이 지난 현재 고 후보자는 담당 과장이 아닌 금융위원장의 위치에서 예전과 똑같은 경제 상황을 맞닥뜨렸다. 부동산 시장 과열은 장기화하고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더 빨라졌다. ‘중도’가 아닌 금융정책기관의 수장으로서 시장에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가계부채 정책을 이끌고 있는 이동훈 금융정책과장이 고 후보자가 감독정책과장 시절 사무관으로 함께 근무했던 것도 눈길을 끈다.
가계부채 관리 수단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가 떠오른다. DSR는 연소득 대비 연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을 말한다. DSR 합계 대상 범위가 확대되면 차주의 대출 여력도 그만큼 줄어든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인 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고 후보자의) 가계부채 문제 인식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가계부채를 놔두면 내년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