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체인 크로거에도 이사회 후보자 지명으로 압박
캘리포니아주, 공장형 돼지 사육 막는 법안 마련
기업과 업계 비용 부담 vs. 동물권 대결
과거 동물보다 소비자를 우선하는 편의를 강조했던 글로벌 기업들은 이제 동물권과 관련한 이들의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지, 또 보호에 나선다면 그 해법은 무엇이 될지 등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에 다다랐다.
특히 동물 중에서도 돼지 사육환경이 돌연 뜨거운 논쟁거리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최근 동물권을 놓고 기업과의 전쟁 선봉에 선 것은 다름 아닌 억만장자이자 행동주의 투자자의 대명사 칼 아이칸이다.
미국 CNBC방송에 따르면 아이칸은 2월 돼지 사육환경을 개선하라며 맥도날드와 위임장 대결을 벌이면서 동물권 향상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아이칸은 “맥도날드가 돼지 사육 환경 개선과 관련해 변화가 없다면 위임장 경쟁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으며 이사회에 멤버들을 보낼 준비도 돼 있다”며 “더는 그들의 말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이후 맥도날드 이사회 멤버로 2명을 추천했다.
맥도날드는 아이칸의 문제 제기에 “올해 말까지 미국 내 돼지고기 조달분의 85~90%를 임신 상자에 넣어 않은 암퇘지로부터 조달할 것”이라며 “이 비율을 2024년 말까지 100%로 높일 것”이라고 답했다. 임신 상자는 몸을 돌릴 수 없도록 매우 좁은 우리에 돼지를 키우는 것으로 그동안 동물권을 침해하는 상징으로 간주됐다.
3월에는 미국 대형 슈퍼마켓 체인 크로거로 동물복지 캠페인의 전장을 넓혔다. 크로거 이사회에도 2명의 후보자 지명 계획을 통보한 아이칸은 “돼지고기 생산 과정에서 임신 상자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회사에 우려를 표했다”며 “그들이 동물들에게 저지른 불필요한 고문과 잔인한 행동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동물권에 관한 움직임은 개인에 국한된 게 아니다. 미국에서는 주 정부와 규제 당국에서도 관심을 보인다.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주민발의안 12’로 불리는 법안을 통해 돼지가 사육 공간에서 몸을 돌리거나 누울 수 있도록 했고,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임신 촉진용 돼지 상자에서 생산된 공장형 돼지고기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법을 위반하는 슈퍼마켓과 식당은 최고 1000달러(약 123만 원) 또는 최대 180일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중순 패스트푸드 체인 웬디스에 돼지 사육 환경을 공개하라는 주주 제안을 주주총회 자료에 포함할 것을 명령했다. 앞서 이 같은 내용을 요구한 동물복지단체 ‘휴먼소사이어티’의 요청을 당국이 받아들인 것이다. 휴먼소사이어티는 “미국 최대 돼지고기 생산업체들이 임신 상자와 관련한 정책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볼 때 상자를 없애겠다는 웬디스의 주장이 사실인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다만 동물권 보장이 자칫 기업과 업계 전체에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아직은 동물권을 놓고 의견이 많이 갈린다. 돼지에 관한 캘리포니아주 법 역시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달 말 업계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이에 관한 심리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발효가 미뤄지고 있다.
미국돼지고기생산자협회(NPPC)는 대법원에 “국내 암퇘지 농장주들은 주민발의안 12의 축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고 요건 대부분이 가축과 직원, 농장 운영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양돈업자는 “환경운동가들이 원하는 변화를 충족하기 위해선 새 헛간을 짓는 데 약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지급해야 한다”며 “많은 양돈업자가 그런 도박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비용 부담에도 동물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는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이익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였던 아이칸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가 전면에 나선 것이 이를 상징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이칸과 같은 투자자가 동물권 이슈에 관한 관심을 높이자 돼지 사육업체들은 자신들이 운영 방식을 변경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출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며 “양돈업자와 환경운동가, 투자자들이 암퇘지 처우를 놓고 다투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