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닻을 올렸지만, 각계각층의 갈등 국면에서 갈가리 찢겼던 상처가 봉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권 강화를 둘러싼 갈등의 불씨가 여전한데다, 노동정책 유연화,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갈등의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예상이 많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형사사법 개혁을 통한 공정한 법 집행’은 검찰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9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검찰 수사권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 공약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방안을 우선 시행하고 최종적으로는 검찰청법을 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예 검찰 예산 편성과 배정 사무를 법무부에서 대검찰청으로 넘기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 내용이 현실화하면 검찰은 ‘법무부 외청’ 지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기구로 발돋움하게 된다.
국민 피해구제 검·경 책임수사 시스템을 정비하겠다는 부분은 검찰에 수사권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부패범죄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도 수사할 수 있도록 공수처를 약화하는 방안도 과제에 담겼다.
국정과제 수행에 앞서 윤 정부는 검찰의 수사권 폐지를 되돌릴 방안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법무부 차원에서 검찰의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이 이뤄질 전망이다. 경제범죄 등 한시적으로 검찰에 남은 수사권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적법성을 두고 여야 간 갈등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사권 폐지의 핵심인 중수청 설치도 험로가 예상된다.
친(親)시장 성향의 노동정책 추진으로 노동계와의 갈등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윤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는 노동제도 유연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우선,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를 유연화할 방침이다. 현행 1~3개월인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산을 1년 이내로 확대하고, 주 52시간 예외를 허용해주는 특별연장근로 대상에 스타트업도 포함한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 유연화도 추진된다. 이를 위해 업무 능력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직무·성과형 임금체계(세대 상생형 임금체계) 도입에 나선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및 업종·지역별 차등화 추진을 통해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의 경영 부담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경영계에서 강력히 바라는 중대재해처벌법 보완도 예상된다.
노동계는 이러한 노동정책을 ‘반(反)노동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용·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채 노동 유연화를 밀어붙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회귀해 노사 간 대립이 극에 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정부가 여가부 폐지 공약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커 현 상태로 젠더갈등을 봉합하는 건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정부는 여가부 명칭을 ‘인구가족부’로 변경하고 ‘가족 지원’과 ‘범죄피해자 보호’ 등 필요한 기능을 선별해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8일 발표한 국정과제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지원을 강화하고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의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대목에서 여가부 역할이 언급됐는데, 이 지점이 향후 인구가족부에서도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여성정책은 주무부처를 분산할 것으로 보인다. 경력단절 여성 훈련은 고용부에, 여성대상 범죄 대응 강화는 경찰청에, 여성 과학기술인재 육성은 과학기술정통부에 맡기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원은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벽돌 끼워 맞추기’처럼 접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 혐오, 차별 문제에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일할 건 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윤 정부가 젠더갈등의 본질을 보다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만18~69세 성인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4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성폭력, 가정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 등 12개 문항으로 구성된 여가부 주요 사업에 대해서 여전히 ‘필요하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