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개도국 스리랑카와 비슷한 문제 겪고 있어
식품가격·에너지가격·긴축 3중고 겪는 나라 69개국 달해
‘살인적 인플레’ 터키·파키스탄 등 위태로운 상태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총리가 경제 위기 책임을 지고 9일(현지시간) 사임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마힌다 총리는 동생 고타바야 대통령과 함께 최근 경제난을 유발한 ‘장본인’으로 지목받으며 야권 등으로부터 퇴진 압박에 시달려왔다. 지난달 정국 수습을 위해 라자팍사 집안 식구인 3명의 장관이 물러나고 이날 마힌다 총리까지 퇴진했지만, 그렇다고 스리랑카가 겪는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스리랑카의 물가상승률은 4월 30% 가까이 치솟았고, 외환 보유액은 19억4000만 달러(약 2조 4700억 원)로 쪼그라든 상태다.
스리랑카는 이번 주 국제통화기금(IMF)과 긴급 구제금융과 구조개혁안 등에 대한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달 초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때까지 510억 달러에 달하는 대외 부채 상환을 유예한다며 일시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상태다.
최악의 경제위기에 3월 이래 전국 각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잇따랐다. 이날은 총리 사임 전 정부 지지자들과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콜롬보에서 충돌해 전국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보고서에서 △식품 가격 상승 △에너지 가격 상승 △긴축 정책 등 세 가지 요소로 인한 경제적 충격 중 하나라도 겪고 있는 국가가 107개국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 중 3가지 요소 모두로 인한 충격을 받는 국가는 총 69개국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50%대를 웃도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발목 잡힌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IMF와 450억 달러 규모의 부채 재조정 협정을 체결했다. IMF는 이집트와 튀니지, 파키스탄과도 각각 구제금융 관련한 협상에 들어갔다. 이집트와 튀니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최대 밀 수입국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파키스탄의 경우 최근 에너지 수입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케냐와 가나, 에티오피아 등이, 중남미 지역에서는 엘살바도르와 페루도 경제 위기에 몰린 상태다. 70%에 육박하는 인플레이션을 겪는 터키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세계은행은 “개도국의 60% 정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부채와 관련한 리스크가 커진 상태였다”며 “특히 이들 국가 중 달러화 표시 국채를 발행한 경우가 많아 달러 강세로 인한 부채 상환 비용 부담도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리처드 코즐라이트 UNCTAD 세계화·개발전략 국장은 “신흥국과 개도국들은 내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 이들이 받는 충격은 내부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다”면서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부채 부담의 엄청난 확대가 발목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흥국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이 이들 국가 부채 문제에 대처할 여력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