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로 첫 영화 주연을 맡은 이정은의 말이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2015)' 출연 당시 캐릭터 연구를 위해 만났던 ‘점쟁이 할아버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는 가슴 깊이 새겼다고 했다.
연극으로 배우 일을 시작해 TV 드라마와 영화로 무대를 넓힌 그가 ‘기생충(2018)'의 가정부 문광 역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대세 배우 반열에 오른 지도 3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이투데이와 만난 이정은은 “’기생충’은 ‘기생충’인 거고, 그로 인해 인생이 얼마만큼 변했느냐고 묻는다면 ‘집에 갈 때는 지하철을 타야되는구나’를 알게 되었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이정은은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의 정감 가는 함안댁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2022)'의 냉정한 나근희 판사까지, 끝없는 호연을 펼치며 몸값을 높여왔다. 현재 방영 중인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2022)'에서는 현실감 있는 제주 여인 정은희 역을 맡아 다시 한번 호평받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에 대한 평가는 담백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런 작품이 계속 있는 건 아니에요. 없을 때는 또다시 지하철을 타고 열심히 여기저기 가서 (작품을) 답사하고 (캐릭터를) 연구해야 합니다. (연기 생활은) 계속 그런 반복인 것 같아요.”
26일 개봉하는 신작 ‘오마주’에서 이정은은 세 번째 만든 영화마저 흥행에 실패한 중년의 영화감독 지완 역을 맡아 연기한다. 지완은 여성이 영화를 만든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던 1960년대에 활동한 고(故) 홍은원 감독의 흑백 영화 ‘여판사(1962)' 복원 작업을 의뢰받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필름이 유실됐다는 걸 알고 누락된 내용을 찾기 위해 애쓴다. 예산도, 시간도 부족하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된 당시 ‘여판사’의 편집기사(이주실)의 집을 방문해 조언을 구하고, 오래전 ‘여판사’를 상영했다는 폐극장 영사실을 찾는다.
이정은은 “버려질 수 있는 누군가의 작업물을 찾아내는 과정이 기쁘고 뭉클했다”고 출연 계기를 전했다. 그는 “지금의 각광받는 작업을 하기 전에 나 역시 마치 ‘오프 브로드웨이’처럼 대학로 언저리에서 공연했다. 그랬던 초기 발자취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분을 만나면 뭉클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오마주’가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했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극 중 지완이 편집기사로부터 듣는 “끝까지 살아남아”라는 대사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했다.
이정은의 차기작은 6월 중 촬영을 시작하는 드라마다. 제목은 아직 공개할 수 없지만 “굉장히 의의 있는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한 ‘메이드 인 루프탑(2020)', 80세 노모와 요양보호사, 중년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말임씨를 부탁해(2021)'처럼 규모가 크지 않은 작품에 인상적인 조연으로 출연한 그는 “나와 (인물 사이에) 어떤 접점이 만들어지는 때, 작품도 나를 필요로 하지만 나도 그 작품을 필요로 하는 때” 출연을 결심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주를 배경으로 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할 때조차도 ‘왠지 저런 사람 진짜 있을 것 같다’고 느끼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