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반도체 안보 동맹에 중추적 역할해
상호 협력 통해 반도체 초격차 유지 전망
尹 대통령 “한중 관계 악화, 문제 없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과 미국이 반도체 기술동맹을 강화하기로 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초격차’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한미 간 반도체 안보 동맹에 있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할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미국 내 반도체 업계에 520억 달러(약 66조 원)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조속히 미 의회를 통과하고 미국 파운드리 공장 건설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삼성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글로벌 무역환경 급변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선 안 된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와 결단에 따라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왔다.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을 목표로 삼성전자는 지난 11월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구축에 총 17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자하기로 하고 미국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했다. 이 부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미국에게 한국을 반도체 산업의 핵심 파트너로 인식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0일 방한 첫 일정으로 군사시설이 아닌 삼성전자를 찾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한국의 반도체 공장을 찾은 것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의 대미투자로 자국 내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위해 한국을 동맹국으로 삼아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며 반도체 자급에 총력전을 벌이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세계 최대 통신칩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로 파운드리에서 큰손 고객으로 꼽히는 퀄컴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최고경영자)와 미국의 대표 장비사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램리서치 대표 등도 수행단에 포함된 점도 의미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반도체 장비 공급망 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꼽힌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 종주국으로 막대한 핵심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한국은 반도체 장비의 45%를 미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수행단의 방한으로 삼성전자 입장에선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미 정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 있는 글로벌 고객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장비 인프라 협력도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한미 양국 간 상호 투자 확대와 리스크 해소 등을 전망하고 있다. 또 미국 투자를 약속하는 기업들에 인센티브와 규제 완화를 제시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삼성전자의 테일러시 공장 투자에 대해 감사를 표한 뒤 “테일러시에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들이 생산될 것으로 믿으며 이 투자를 통해 텍사스에 3000개의 새로운 첨단 일자리가 생기고 삼성이 이미 미국에서 창출한 일자리 2만 개에 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같은 날 연설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도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할 뿐 아니라 미국의 첨단 소재·장비·설계 기업들의 한국 투자에도 큰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평택캠퍼스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을 안내하며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 예정인 차세대 GAA(Gate-All-Around) 기반 3나노(㎚·1㎚는 10억 분의 1m) 반도체 시제품을 선보였다.
업계에서는 전 세계에 기술 우위롤 보여줬을 뿐 아니라 대만 TSMC보다 3나노 공정에서 앞섰다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대형 팹리스 유치에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TSMC는 3나노에서 기존 핀펫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몇 차례 양산 시점이 지연되다 올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와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전자 방문에 대한 중국 보복 우려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한국의 반도체 최대 수출국으로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공장이 중국 시안에, SK하이닉스 D램 공장이 우시에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전날 논평을 통해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한국이 무조건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은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입장에선 이제 막 시스템·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본격적인 상업화 단계에 접어든 상태로 국산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아직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한국 의존도가 높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한국과 안정적인 협력 관계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매체들은 바이든 대통령 순방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 반도체 업체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균형’을 요구해왔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제2의 사드 사태가 될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IPEF 등 구체화된 것이 없어) 가타부타 말하기 어렵다”며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한중 관계 악화 가능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20일 IPEF 동참에 따른 중국과의 관계를 묻는 말에 “중국과의 관계도 경제 관계를 잘 해 나가면 되는 것”이라며 “그렇게 제로섬으로 볼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