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한반도는 갑작스러운 종전을 맞는다. 비무장지대에는 공동경제구역(JEA)이 건설됐다. 이곳에 남북 공동 화폐를 만드는 한반도 통일 조폐국이 설립된다. 그런데 이 조폐국을 노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천재적 전략가 교수(유지태)와 8명의 강도다.
이들의 계획은 단순히 돈을 터는 게 아니다. 조폐국에 침입해 이곳을 장기점거하면서 4조 원을 찍어 나눠 갖는 것이다. 강도단은 교수의 계획대로 조폐국을 장악하고 인질들을 동원해 돈을 찍어낸다. 그 사이 밖에는 선우진(김윤진)을 주축으로 한 남북공동위기협상팀이 꾸려져 인질들을 구할 방법을 모색한다.
여기까지는 모두 교수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그런데 예상을 벗어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강도들 사이에 분열이 시작되고, 인질과 강도 사이에 새로운 감정들이 싹튼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작전을 끝마칠 수 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이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스페인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원작의 굵직한 설정을 그대로 유지하되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접목해 차별화를 뒀다.
지난달 24일 공개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사흘 만에 넷플릭스 ‘주간 글로벌 톱10’에서 비영어 시리즈 부문 1위에 올랐다. 이탈리아, 멕시코, 태국, 이집트 등 총 51개 나라의 톱(TOP) 10에 이름을 올렸고, 한국을 비롯한 6개국에선 1위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작품 속에 조폐국이 있다면, 현실에는 ‘한국조폐공사’가 있다. 한국은행이 발권계획을 세우면, 한국조폐공사는 그에 따라 화폐를 생산한다. 국내 유일의 제조공기업이다. 화폐뿐만 아니라 기념 화폐, 수표, 증권과 채권 등 유가증권, 백화점 상품권, 지역 상품권 등도 만든다. 올림픽 메달, 정부가 수여하는 각종 훈장 등도 제조한다.
경북 경산시에 위치한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는 ‘특급 보안’을 자랑한다. 청와대와 같은 수준인 ‘가급’ 국가보안시설이다. ‘국가 중요시설 지정 및 방호 훈령’에 따르면 적에 의해 점령 또는 파괴되거나 기능 마비 시 광범위한 통합방위 작전 수행이 요구되고, 국민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설은 가급으로 분류한다.
화폐본부의 모든 곳은 허가 없이는 사진 촬영이 제한된다. 7만2800㎡(2만2017평)의 건물과 46만3400㎡(14만200평)의 대지로 이뤄진 화폐본부는 출입통제시스템이 256대나 설치되어 있고, 426대의 CCTV가 출입하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종이의 집’처럼 강도단이 한국조폐공사를 점거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화폐본부에서 보안만큼 중요시 여기는 게 또 있다. 바로 화폐의 품질이다. 5만 원권 지폐 한 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총 8단계의 공정을 거치는데, 40일이 소요된다. 이렇게 생산된 지폐의 불량률은 3%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높은 기술력 때문에 위조지폐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화폐 취급 과정에서 발견했거나 금융기관 또는 개인이 발견해 한국은행에 신고한 위조지폐는 총 176장이다. 관련 통계를 공표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최저치다. 100만 장당 발견된 위조지폐 건수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0.03장에 불과하다. 멕시코(44.4장), 영국(43.7장)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돈을 찍어내는 데에는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새 화폐를 만드는 데는 연간 약 1100억 원(2017~2021년 평균)이 든다. 매년 폐기되는 화폐량도 상당하다. 지난해 훼손되거나 더러워져서 폐기한 화폐는 403만 장으로, 그 금액은 2조 423억 원에 달한다. 폐기된 화폐를 낱장으로 쌓을 경우 그 높이가 134㎞다. 이는 롯데월드타워 높이의 241배, 백두산의 49배,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의 15배 수준이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은 강도들의 작전 성공 여부를 보여주지 않은 채 끝난다. 결말을 포함한 ‘파트2’는 하반기에 공개될 예정이다. 과연 교수와 강도들은 조폐국에서 4조 원을 훔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작품을 보다 보면 도쿄(전종서)의 말처럼 ‘나쁜 짓’을 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강도들이 한국조폐공사를 습격하는 건 현실에선 벌어져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