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넘치는 강렬한 디자인이 최대 매력
1.5ℓ 가솔린 터보 엔진과 6단 AT 맞물려
매끈한 도심형 SUV와 달리 정통 SUV 추구
제법 잘 생긴 ‘토레스(Torres)’는 등급을 단정하기 어려웠다.
차 곳곳에는 그 시절 쌍용차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무쏘’의 분위기는 물론, 젊은 사내들의 가슴을 방망이질 쳤던 ‘뉴 코란도(2세대)’의 현대적인 재해석도 고스란히 담겼다. 처음 만나는 차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다는 점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시승회에 나서 차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세그먼트(차종에 따른 분류)를 단정하기도 어려웠다.
현대차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 등이 장악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보다는 작고, 투싼과 스포티지가 버틴 준중형 SUV보다는 크다. 제원상 중형 SUV에 가깝지만, 가격과 파워 트레인은 준중형과 맞선다. 틈새를 파고들겠다는 제품 전략이 오롯이 담겨있는 셈이다.
트림(등급)을 2가지로 간소화하며 틈새를 파고든다. 2740만 원의 T5 트림과 3020만 원의 T7 트림이 전부다. 싼타페 기본형과 투싼 상위 모델과 겹치는 구간을 노렸다. 모르긴 몰라도 이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쌍용차는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차는 제법 길어 보인다. 필러(차체와 지붕을 연결한 기둥, 앞쪽부터 AㆍBㆍC필러로 부른다)를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한, 이른바 ‘랩 어라운드’ 타입의 디자인 덕이다. 다만 2010년대 초, 3세대 코란도부터 쌍용차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두터운 C필러는 토레스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과감하고 공격적인 겉모습과 달리 실내는 단순하되 화려하다. 좌우로 길게 뻗은 대시보드(운전석 앞 각종 계기가 달린 부분)는 그동안의 쌍용차 인테리어 디자인과 전혀 다른 ‘궤’를 지닌다. 운전석에서 바라본 계기반 역시 슬림한 레이아웃 속에 다양한 정보를 보기 쉽게 담았다.
에어컨 바람을 뿜어내는 송풍구도 얇다. 그 탓에 바람세기를 최대로 키우면 육중한 풍량과 함께 제법 커다란 소음도 뿜어낸다.
이와 달리 대시보드 중앙에 심어 넣은 '센터 디스플레이'는 무려 12.3인치에 달한다. 배경이 된 대시보드가 슬림한 덕에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이는 효과도 얻었다.
물리적인 버튼을 모조리 없앤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스티어링 휠(운전대) 위에 얹은 버튼을 제외하면 센터페시아 주변의 모든 버튼은 터치식이다.
운전대는 기본적으로 G4 렉스턴의 그것과 동일하나 손에 잡히는 ‘림’(손으로 잡는 원 부분)은 더블 D컷 타입으로 진화했다. 운전대의 위와 아래를 알파벳 D처럼 싹둑 잘라낸 모습은 국산차 가운데 토레스가 처음이다.
애초 D컷 운전대는 모터스포츠에서 출발했다. 코너와 코너를 반복하는 레이싱카의 특성을 위해 코너의 정점에서 정교한 핸들링을 뽑아내기 위해 운전대 아랫부분을 알파벳 D 모양처럼 빚어낸 것. 이제는 전방 시야까지 고려해 위와 아래를 모두 짓누른 '더블 D컷 운전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테리어는 몸에 닿고 손이 머무는 곳곳에 감성 품질을 더했다.
다만 이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원가절감의 묘미도 숨어있다. 예컨대 도어 내장재 가운데 손이 자주 가는 위쪽은 가죽과 하이그로시로 마감한 반면, 손이 가지 않는 부분은 모조리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로 마감했다. 차 등급에 맞는 원가절감 노하우다. 우리가 불평할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토레스는 최고출력 170마력을 내고, 최대토크는 28.6kgㆍm에 달한다. 순발력만 따져보면 가솔린 V6 3000cc와 맞먹는 힘이다. 배기량을 줄이는 ‘엔진 다운사이징’의 시대가 저물었으나 아직 쌍용차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당분간 이 엔진으로 다양한 라인업을 버텨야 한다.
출발은 경쾌하다. 최대토크 대부분을 2000rpm 언저리에서 뿜어내는 덕이다. 가속페달을 짓누르면 앞머리를 불끈 들어 올리며 무섭게 가속한다. 아이신 6단 변속기는 반 박자 늦게 움직이되 격하게 반응한다.
킥다운으로 급가속하면 회전수가 반 박자 늦게 치솟는다. 다분히 엔진과 변속기의 내구성을 고려한 세팅이다.
6단 변속기는 기어를 2단계씩 뛰어넘는, 이른바 ‘스킵 시프트’를 최대한 자제한다. 6단 순항 기어를 제외하면 스킵 시프트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롯하게 기어를 한 단계씩만 낮춘다. 변속기와 엔진의 내구성을 위한 세팅이다.
차 크기가 제법 넉넉한 덕에 같은 파워트레인을 얹은 코란도와 비교하면 앞뒤 피칭은 유사하고 좌우 롤링은 좀 더 큰 편이다.
경쟁차를 뒤로하고 토레스를 골라야 할 요소는 차고 넘친다. 비슷비슷한 SUV들이 넘쳐나는 요즘, 토레스는 뚜렷한 개성과 드라이버의 지향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디든 갈 수 있고(Go anywhere) 무엇이든 할 수 있다(Do anything)’라는 이들의 주장은 정통 SUV의 지향점과 오롯하게 겹친다.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엔진과 변속기의 특성, 서스펜션(충격 흡수장치)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이 차를 골라야 하는 이유는 뚜렷하다. 꽤 잘 생긴데다 어디에 내놔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디자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