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품질 갖춘 차세대 세단형 EV
아이오닉 5보다 직진성 뛰어나
폭발적 가속력 앞세워 '순간 이동'
눈앞에 선 아이오닉 6(식스)은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다.
밑그림이었던 콘셉트카 '프로페시'가 휠ㆍ타이어와 펜더, 차 길이ㆍ너비 등을 마음껏 키웠던 탓이다. 양산형으로 등장한 아이오닉 6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을 반복한 끝에 이 사이즈를 결정했다.
아이오닉 6은 현대차의 두 번째 전용 전기차다. ‘아이오닉’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을 뿐, 앞서 등장한 아이오닉 5(파이브)와 출발부터 궤를 달리한다.
SUV를 지향했던 아이오닉 5와 달리 세단을 추구했던 아이오닉 6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건 순전히 욕심 탓이다.
언론 시승을 위해 수십 대의 아이오닉 6가 건물 실내 주차장에 늘어섰다. 이제껏 사진으로만 영접했을 뿐, 실물로 마주한 건 처음. 수십 대가 출발 준비로 늘어섰으나 이 공간은 한없이 고요하다. 전기차 특유의 고주파 모터음만 들린다. 당연히 코끝을 찌르는 배기가스도 찾아볼 수 없다.
전기차 시대의 시승행사는 이런 모습으로 변화 중이다.
2000년대 들어 현대차는 보디 패널과 패널을 숨 막히게 맞물렸던 폭스바겐을 부러워했다. 고작 3mm 틈새를 자랑했던 폭스바겐의 조립 기술은 일본 토요타는 물론, 현대차에게도 추종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렇게 병적인 완벽주의를 지향했던 현대차 역시 이제 지향점(폭스바겐)에 견줄만한 3mm 틈새를 완성했다. 패널과 패널은 꽤 정교하게 맞물렸고 감성 품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밑그림은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다. 주요 부품 모듈을 장르와 차급에 따라 블록처럼 끼워 맞춰 조합하는 개념이다. 최근 10년 사이 자동차 업계가 앞다퉈 도입했던 모듈형 플랫폼이다. 그만큼 확장성과 유연성이 빼어나다.
폭스바겐 역시 일찌감치 앞바퀴굴림 전용 플랫폼 MQB를 밑바탕 삼아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를 공개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2년. 폭스바겐이 모듈형 플랫폼 MQB를 발표했다. 같은 해 일본 토요타와 닛산 역시 TNGA와 CMA 플랫폼을 공개했다. 이들은 전기차 시대에 맞춰 서둘러 모듈형 플랫폼을 가지고 전기차 플랫폼으로 확대했다.
현대차가 입이 마르도록 자랑을 아끼지 않았던 모듈형 플랫폼은 이미 10년 전 독일과 일본 경쟁사들이 선보인 기술이라는 의미다.
전반적으로 같은 아산공장에서 나오는 쏘나타보다 차 길이가 5cm 짧은 반면, 너비와 높이는 각각 2cm와 5cm가 길다.
무엇보다 휠베이스가 11cm나 길다. 앞바퀴굴림 내연기관 중형차와 맞비교가 어렵지만 가장 보편화한 차를 기준으로 삼아보면 아이오닉 6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차 길이가 상대적으로 쏘나타보다 짧되, 4개의 바퀴가 모서리 쪽으로 뻗어 나간 덕에 넉넉한 휠베이스를 뽑아냈다. 휠베이스가 넉넉하면 직진 안정성은 물론 승차감이 뛰어나다. 나아가 노면 굴곡에 따른 앞뒤 피칭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 다만 회전반경이 커 도심에서 재빠른 거둥이 부담스럽다.
코끝부터 엉덩이까지 물 흐르듯 넘실대는 디자인 덕에 국내 양산모델 가운데 공기저항계수(Cd 0.21)가 가장 뛰어난 모델이기도 하다.
묵직한 도어를 열고 실내에 들어서면 겉모습과 같은 테마의 디자인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던 이제까지의 현대차와 모든 게 다르다. 많은 것들이 원래 있던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에 둥지를 틀었다.
아이오닉 5는 사이드미러 대신 양쪽 도어에 모니터를 달았다. 그런데 도어를 여닫는 충격 탓에 내구성 논란이 커졌다. 화들짝 놀랐던 현대차는 아이오닉 6의 모니터를 대시보드 끝 단에 붙였다.
통상 도어에 달렸던 파워윈도 스위치도 운전석과 동반석 사이, 센터 스택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0년대 탔던, 기자의 첫차도 이랬다. 지금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는 ‘파워윈도’ 자체가 고급차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오늘. 예쁜 도어를 만들기 위해 복잡한 갖가지 스위치는 '센터스텍' 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운전자는 물론 동승자도 쉽게 쓸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도어에서 파워윈도 스위치를 없앴다는 건 많은 의미를 지닌다. 이제 음성이나 손짓만으로도 파워 윈도를 올리고 내릴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이 밖에 많은 것들이 자리를 옮겼다. 심지어 고속도로 주행보조(HDA) 시스템 버튼조차 운전대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했다. 서둘러 익숙해져야할 필요가 있다.
조용한 도심을 나와 자동차 전용도로에 올라선다. 다분히 전기차 특성대로 가속페달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차의 움직임으로 반영한다.
시승차의 배터리 용량은 77.4kWh다. 출발 직전 화면을 통해 확인한 주행가능거리는 470㎞다. 네바퀴굴림 고성능 버전이다. 주행거리가 더 늘어난 롱레인지(2WD)는 1회 충전으로 524㎞를 달릴 수 있다. 이제껏 현대차나 내놓은 전기차 가운데 최장 거리다.
자동차 전용도로에 올라선다. 가속페달을 짓누르면 한 마디로 차를 가볍게 전방 지평선을 향해 ‘발사’할 수 있다. 어설픈 운전자라면 놀랄만한 파괴력에 당황할 수도 있다.
직진성은 아이오닉 5보다 뚜렷하고 역시 전용 전기차인 제네시스 GV60(식스티)와 비슷하다.
전기차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배터리를 차 바닥에 깔아놓는다. 그 탓에 무거운 쇠구슬을 품고 있는 오뚜기처럼 기우뚱거리며 자세를 추스른다. 아이오닉 5와 달리 아이오닉 6는 이 동작이 우아하다. SUV와 세단의 차이를 넘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오닉 5와 6를 비교하게 된다. 주행안전성이 대표적이다. 동일한 휠베이스를 지녔으나 상대적으로 차 높이가 낮은 덕에 아이오닉 6의 직진성이 더 뚜렷하다.
덕분에 뱀이 똬리를 튼 듯한 굽잇길에서도 아이오닉 6은 마음껏 코너의 정점까지 차를 내 던질 수 있다. 기다란 휠베이스를 지녔음에도 앞뒤 바퀴가 동떨어진 느낌 없이 매끈한 궤적을 그린다는 점도 독특하다.
코너를 덤빌 때마다 슬며시 자신감이 솟구치는 배경에는 피렐리 타이어와의 궁합도 한몫한다.
아이오닉 6은 앞으로 등장할 현대차의 전용 전기차의 밑그림이 된다. 아이오닉 시리즈의 홀수는 SUV가, 짝수는 세단 및 크로스오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를 고려하면 아이오닉 6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두 담고 있다. 크기를 줄이거나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아이오닉 6은 두 번째 전용 전기차인 동시에 우리의 시선을 단박에 전기차 시대로 옮겨놓은 주인공이다. 나아가 테슬라를 뒤쫓을 만한 감성품질과 성능마저 지녔다.
아이오닉 시리즈가 등장하면서 전기차는 선택받은 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사정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당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