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일 내에 미국산 공급망 확보가 관건
배터리 업계도 비상…미국산 광물 비중 5년 안에 80%로 늘려야
“바이든 정부, 업계 움직일 수 있도록 환경 조성해야”
IRA의 주요 정책은 크게 기후와 의료, 세금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업계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이 바로 기후 분야에 담긴 전기차 관련 정책이다.
이에 따르면 전기차 기업은 내년까지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 부품의 50%가 북미에서 제조된 것이어야 자동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부품 비율을 해마다 늘려 2029년까지 100%를 달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전기차 배터리도 규제 대상이 됐다. IRA는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 40%가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가공된 것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해당 비율 역시 계속 늘려 2027년까지 80%로 올려야 한다.
IRA 승인에 한국 기업들은 혼란에 빠졌다. 당장 미국에서 아이코닉을 판매하는 현대차는 혜택을 온전히 받아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지아에 새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지만, 일각에선 2024년까지 완공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현대차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착공 시점을 10월로 앞당겨 2024년 하반기 완공하겠다는 방침이다.
도요타자동차와 포르쉐도 현대차와 비슷한 상황이다. 반면 북미에서 배터리를 제조하고 있는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들 기업이 IRA가 지급하는 차량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67만 원)의 보조금 중 절반인 3750달러의 부분 지원금을 가까운 시일 내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엔 보조금을 모두 챙기기 위해 테슬라가 독일에서의 배터리 생산을 보류하고 미국으로 장비를 옮기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하기도 했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보고서에서 “IRA는 미국 전기차 시장 활성화 요인으로 작용함에 따라 한국 완성차에 기회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다만 IRA 통과로 전기체 세제 혜택의 상한(제조업체당 20만 대 한도)이 사라졌지만, 각종 제약조건으로 실질 세제 혜택 규모는 향후 수년에 걸쳐 과거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전부터 전기차를 7대 전략산업 중 하나로 정하고 관련 산업 개발에 몰두했다. 그 결과 중국은 현재 전 세계 2차전지 소재 제련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배터리 광물 제련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리튬이 57.6%, 니켈은 35.3%, 코발트는 64.6%에 이른다. 하지만 IRA는 이런 현실을 무리하고 중국을 전기차 보조금 혜택과 관련해 전면 배제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고민은 나오고 있다. 노스웨스턴대의 제니퍼 던 엔지니어링 지속 가능·회복 센터 공동 소장은 더힐 기고를 통해 현재 전기차 업계의 배터리에 포함되는 미국산 광물이 극도로 적은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던 소장은 “배터리 대부분이 미국 외 지역에서 조립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배터리에 포함되는 미국산 금속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다”며 “IRA 목표를 달성하는 데 4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4년 동안 비율을 극적으로 높이려면 리튬 이온 배터리에 대한 재활용 기술 발전이 중요하다”며 “이 기술은 아직 연구·개발(R&D) 기간이 매우 짧고 미국에선 대규모로 연구가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자동차혁신연합의 존 보젤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미국 라디오방송 WDET에 출연해 바이든 행정부가 단지 법안 통과에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업계를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 피력했다. 업계가 법안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보젤라 CEO는 “포드와 같은 일부 미국 기업들은 최근 새 공장을 건설하고 미국에서 부품을 제조할 예정이지만, 여전히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고 있다”며 “자동차업계는 이미 중국 이외 지역에서 탄력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그건 지금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미국에서 중요 원자재에 대한 광산 채굴을 정부가 얼마나 빨리 허가할 수 있는지, FTA를 넘어선 동맹국 리스트가 충분히 확보됐는지 등의 문제가 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