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빌라(연립·다세대) 경매시장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매수심리가 식으면서 매매는 물론, 경매시장마저 빌라를 찾는 발길이 뚝 끊긴 모양새다. 일부 사례에선 감정가의 3분의 1 수준에 낙찰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5일 부동산 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소재 전용면적 113㎡형 다세대주택 한 가구는 감정가의 32% 수준인 최종 2억1712만 원에 낙찰됐다. 서울서부지법 경매3계에서 진행된 해당 경매 물건의 감정가는 지난 5월 기준 6억7900만 원이다.
해당 물건은 5월 경매 이후 여섯 차례나 더 경매를 진행한 끝에 주인을 찾았다. 유찰을 거듭하면서 최종 낙찰가는 감정가의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해당 경매물건 인근 빌라 전용 39㎡형 호가는 이날 기준 5억5000만 원 수준에 형성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또 지난달 28일 서울동부지법 경매3계에서 열린 서울 송파구 삼전동 전용 90㎡형 다세대주택 한 가구 역시 감정가 6억1644만 원의 78% 수준인 4억7788만 원에 최종 낙찰됐다. 이곳은 응찰자가 10명이나 몰렸지만, 최종 낙찰가는 감정가 이하로 형성됐다.
보통 경매 낙찰가율은 부동산 시장 선행지표로 사용된다.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으로 생각하면 더 높은 낙찰가를 써내 낙찰가율이 오르지만, 집값 하락 전망이 이어지자 응찰자가 몰려도 감정가 이하에서 낙찰가가 형성된 것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최근 아파트 매매시장이 안 좋다 보니 거주여건이 상대적으로 더 떨어지는 빌라 매매시장은 더 큰 타격을 받았다”며 “아파트값이 떨어지다 보니 빌라 시장에도 관망세가 번진 상황이고, 낙찰가율도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간혹 낙찰가율이 높은 물건들은 대부분 서울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등 재개발 이슈가 있는 곳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 빌라 경매 관련 통계 수치는 악화일로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다세대주택 평균 낙찰가율은 80.6%로 나타났다. 7월(90.7%) 연내 최고 낙찰가율을 기록한 뒤 계속 내림세다. 응찰자 수 역시 지난달 평균 2.02명으로 연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울러 지난달 서울 다세대주택 낙찰률(입찰 물건 중 낙찰 물건 비율)은 13.8%로 10월 13.7%에 이어 두 달 연속 10% 초반에 머물렀다. 올해 빌라 낙찰률은 1월 31%로 시작해 4월 40.8%까지 올랐다. 하지만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 영향으로 매수세가 끊기면서 낙찰률은 줄곧 하락했다.
빌라 낙찰률 10%대 기록은 지지옥션이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2년 이후 20년래 최저 수준이다. 2008년 12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빌라 낙찰률은 25.3%로 조사됐다. 이는 최근 빌라 낙찰률의 두 배에 달한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경매시장은 낙찰가율 82.9%에 낙찰률 15.9%, 평균 응찰자 수는 3명으로 집계돼 빌라 시장 상황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내년 상반기 이후 빌라 경매 시장 상황이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하반기 들어 전세 보증금 미반환 등 ‘깡통주택’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7월부터 10월까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신청한 강제경매 건수가 총 598건에 달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내년 상반기까지 전셋값 하락과 대출 금리 상승 영향으로 경매에 내몰리는 물건이 늘어날 전망이지만 경매시장을 찾는 발길이 끊겨 서민은 전세 보증금 회수도 어려워질 상황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시장 악화로 빌라 낙찰가율이 낮아지면 세입자의 보증금 회수 길이 막혀 세입자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