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 주공 흥행 기대보다 저조…부동산 관련 옥석 가리기 진행
내년 위기 근원 경기침체ㆍ부동산…한계기업들 리스크 더 커질 것
#롯데건설은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으로 계열사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달에는 롯데케미칼에서 5000억 원을 빌렸고, 이달에는 롯데정밀화학에서 3000억 원, 롯데홈쇼핑에서 1000억 원을 3개월간 차입하기로 했다. 지난 18일에는 하나은행과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서 총 3500억 원을 차입했다.
“금융위기는 사람들이 금융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교수가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던 말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느끼는 국내 금융시장은 어떨까. 우량기업이 발행하는 만기가 긴 채권(장기물) 수요가 살아나고 기업어음(CP) 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레고랜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의 불안이 수그러드는 모양새다.
하지만 곳곳이 위험신호다. 신용스프레드는 여전히 1.7%포인트에 육박한다. 자금 조달 시장에서는 기업간 양극화가 커졌고, 내년 경기에 대한 불안은 더 짙어졌다. 이투데이가 신용채권시장 전문가 7인에게 “2023년 자금 조달 시장과 위험 요인을 뭐라고 보는지”물었다. 결론은 “위험은 낮아졌지만, 어디서 불안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위험 요인으로 가파른 금리 상승(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 신용채권 시장에 대한 불신 등을 꼽았다.
SK텔레콤은 지난 6일 회사채 2500억 원을 조달할 계획이었는데 모집액의 8배에 가까운 2조 원어치의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통영에코파워(A+) 등은 수요예측에서 모집액 미달과 미매각 사태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자금조달 사정은 빠듯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한구 금융투자협회 채권전문위원은 “최근 금융시장 안정대책이 시행되면서 국고채, 특수채, 우량 회사채 쪽은 숨통이 틔였다”면서도 “다만 비우량물은 A급 회사채가 시장에서 얼마나 소화가 되느냐, 발행되고 판매되느냐가 관건인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과거에도 크레딧 시장이 안정되면 A급물이 시장에서 소화가 되기 시작하는데, 아직 시장에서 A급물 소화는 힘들다”고 짚었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회사채 상위등급은 나쁘지 않다. CP금리도 더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며 “관련 정책이 계속 나오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한두 번 정도에 그친다면, 단기자금시장이 올해보다는 완화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시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일부 건설사, 부동산 PF사업 비중이 큰 증권사들은 부도설까지 나오고 있다. 벤처업계의 어려움도 커졌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벤처캐피탈 투자가 작년 같은 기간 대비해 40.1% 급감했다. 높은 예·적금 금리를 쫓아 은행에만 자금이 몰리는 ‘역머니무브’도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내년 경기 침체기에 금리가 높아지면 기업 부실 가능성이 커져 돈을 빌리기가 어렵다. 채권시장으로 자금 유입도 잘 안 돼 이런 추세가 심화할 수 있다”며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 건설사 등 부동산 업계 자금 압박이 심해질 텐데, 자금이 은행 쪽으로 흘러 들어가 채권시장 자금 공급이 원활치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곽준희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에도 채권 발행에 어려움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며 “발행이 늘더라도 평년 수준에는 밑돌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부동산시장발 위기는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둔촌 주공이 기대치보다 저조해 분양시장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상황이다. 내년 초 부동산 PF 연관금액만 150조 원이고 브릿지론만 30조 원이 넘는다는데, 내년에 사업들이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며 “내년 초 부동산 관련 크레딧 쪽 구조조정은 불가피해 보이고 그 안에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거라 본다. 그러므로 ABCP 중심으로 CP 금리 하락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종혁 KB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 이사는 “올해 유동성 위기로 인한 신용 경색, 크레딧 악화는 내년부터는 어느 정도 좋아지겠지만, 신용 펀더멘털 자체는 본격적으로 안 좋아지는 사이클이 될 것”이라며 “건설업 등 사이클상 업황이 안 좋아질 섹터나 기업군은 내년 펀더멘털에 따른 차이가 커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이 꼽은 내년 위기의 근원지는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이었다.
이한구 전문위원은 “내년 경기침체가 채권시장 리스크”라며 “기업 입장에서 수익성이 안 좋아지면 채권 발행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수익도 좋지 않고, 이자 부담도 커지면 한계기업들은 내년에 위험도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익 서강대 교수는 “내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고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까지 갈 수도 있다”며 “경기 침체가 오고 이익이 줄어들면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는데, 큰 리스크”라고 답했다. 곽준희 연구위원은 “가계부채가 문제가 된다면 어려워질 수 있겠다.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고 있으니 역전세 이슈 등도 나올 것 같다”며 “부동산 PF 리스크도 예고돼있다. 건설사나 증권사가 구조조정을 거칠 것”이라고 했다.
국제 리스크로는 미국 금리 인상 추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꼽혔다.
곽준희 연구위원은 “미연방준비위원회(Fed·연준)가 5% 이상으로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린다면 국내 채권 금리도 올라간다”며 “소비자물가지수(CPI)나 연준 동향이 해외 리스크 중 가장 크다”고 짚었다. 이한구 전문위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여삼 연구원은 “중국이 코로나 정책을 얼마나 잘 수습하고 경제가 반등을 이뤄낼지가 관건으로 보인다”며 “정치적으로는 중국-대만 이슈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남아있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