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박모 씨(35)는 삼성전자 때문에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2020년 하반기(7∼12월) 상승장이 본격화하자 박 씨는 차곡차곡 모은 적금과 부모님께 증여받은 5000만 원을 합쳐 7000만 원을 삼성전자에 투자했다. 하지만 26일 현재 수익률은 ―34%. 박 씨는 “‘물타기’도 이제 지쳤다. 내년에 ‘삼성생명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전자 ‘지하실’을 볼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6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삼전 개미’(삼성전자 보유 개인투자자)들의 얼굴에 주름이 한가득하다. 메모리반도체 산업에 불어닥친 한파가 점점 매서워지는 가운데 내년 증시에 삼성전자 주식 19조 원이 쏟아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런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2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시가 평가에 따라 삼성생명은 총자산의 3%를 초과하는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보통주 8.51%와 우선주 0.01%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주가 기준으로 평가할 경우 26조9900억 원에 달한다. 삼성생명 총자산(고객 자산 제외)의 3%는 7조8900억 원이다.
지분 매각이 현실화 한다면 ‘총수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도 타격을 입는다.
증시 전문가들은 “수십조 원의 삼성전자 주식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면 큰 충격이 예상되고, 주가 약세로 개인투자자에게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물산으로서는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봤다.
우선 지주회사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생명의 지분 전량(19.34%)을 처분하고 삼성전자의 지분을 30%까지 확대한다. 여기에는 86조 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또는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3.1%를 처분해 홍라희 여사(1.96%)에 이은 2대 주주가 됨으로써 지주사 전환 의무를 해소하는 선택지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삼성생명·화재·물산이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주식은 약 40조 원 규모인 12.2%다. 삼성그룹 지배주주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기존 20.75%에서 8.5%로 줄어든다.
그는 “(이를 시행하면) 오버행에 따른 주가 충격이 우려되고 삼성그룹 지배력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면서 삼성그룹의 지분구조 개편이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 일반 주주에게 악재가 될 것으로 봤다.
최 연구원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할 시 법인세, 유배당 계약자 배당, 특별배당 지출이 전망된다. 30조 원에 달하는 지분 처분 후 약 11조 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확보한다”며 “‘AA’등급 채권을 매수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기존 수익 대비 약 1조 원 규모의 수익 감소가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 처분한 삼성전자 물량에 대한 바이백 규모(약 46조 원)가 시중 유통 물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주가 상승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특히 주주환원에 사용돼야 할 재원이 계열사 지분 처리에 투입되는 의사결정에 대한 이사회 부담에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물산은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수준을 재배당하는 원칙을 수립했고, 이후 DPS(주당배당금)는 2019년 2000원에서 2021년 4200원으로 상승했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면 배당이 축소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외유출분과 전자로부터 수취하던 분기 배당수익률 약 3% 감안 시 향후 지금 수준의 투자 손익을 유지하기 위한 재투자자산의 투자수익률은 최소 6.4%로 추정된다”며 “삼성전자 지분 처분이 중장기 이익 흐름을 훼손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라고 했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법’이 시행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대부분 매각해야 하며, 막대한 매각이익이 발생한다”면서 “다만 유배당 계약자 및 법인세 발생에 따른 자산 감소, 삼성전자를 대체할 자산을 찾는 과제 등을 고려할 때 실익은 크지 않다. 해당 이슈는 기업가치 개선보다는 주가 변동성 요인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