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및 미분양 상황이 심화하면서 건설사들의 정비사업 수주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들은 우선협상대상자를 취소하거나 심지어는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히 시공권을 포기하기도 한다. 부동산 경기가 예전만 못하자 이른바 ‘묻지마 수주’에서 벗어나 철저한 사업성 분석을 통한 옥석 가리기가 심화할 전망이다.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쌍용건설은 최근 경기 군포시 설악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포기했다. 이 사업은 리모델링을 통해 기존 1471가구 규모의 단지를 16개 동, 1691가구 규모로 짓는 프로젝트다.
앞서 지난해 조합은 두 번의 시공사 선정에 나섰지만 유찰되면서 수의계약으로 전환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르면 일반 경쟁입찰 시 입찰자가 없거나, 단독 응찰로 2회 이상 유찰되면 조합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이에 조합은 쌍용건설-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하고, 다음 달 시공사선정총회를 열 계획이었다.
다만 쌍용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포기하면서 조합으로선 입장이 난처해진 상황이다. 조합 관계자는 “계획대로 다음 달에 시공사를 선정하려 했지만, 지난달 지위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사업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며 “최근 20여 곳 건설사에 연락을 돌리는 등 적절한 시공사를 찾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쌍용건설은 이곳 말고도 최근 서울 성동구 응봉동 신동아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도 포기했다. 조합은 지난해 5월 쌍용건설-호반건설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한 바 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컨소시엄을 구성한 각 건설사와 협의한 결과 두 곳 모두 내부적으로 추정한 사업성이 기준 미달로 나타나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시공권을 포기한 건설사도 나왔다. 대우건설은 이달 6일 울산 동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개발사업의 후순위 대출 보증(브릿지론) 440억 원을 자체 상환하고 시행사 측에 시공권을 포기한다고 통보했다.
대우건설은 원래 440억 원을 보증하고, 공사비로 1600억 원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계속된 금리 인상에 따라 브릿지론 금리도 크게 오르고, 미분양 사태도 지속하면서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울산의 미분양 가구 수는 대우건설이 이 사업의 계약을 체결했던 지난해 4월 361가구에서 지난해 12월 3570가구로 약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처럼 분양사업 리스크가 커지자 조합에서는 시공사를 모시기 위해 조건을 맞추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울산 중구 B04 재개발 조합은 지난달 5일 삼성물산-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했다. 이 사업은 55개 동, 4080가구를 짓는 프로젝트로, 예상 공사비만 1조2000억 원에 달해 울산 지역 재개발 최대어로 꼽혔다.
단일 브랜드를 원했던 조합은 초반에는 컨소시엄 불가 조건을 내걸고 지난해 8월과 11월 시공사 선정에 나섰다. 그러나 어려워진 부동산 경기로 정작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모두 입찰하지 않았고, 이런 상황이 길어지자 조합은 컨소시엄 체결 형태로도 입찰할 수 있도록 조건을 변경했다. 최종 입찰은 다음 달 중 진행될 전망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분양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철저한 사업성 분석을 통해 리스크가 없는 곳을 중심으로 선별적인 수주 형태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