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미루고 항공기 멈추고...달러 동난 신흥국 벼랑 끝

입력 2023-03-0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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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의약품 살 달러 부족해 수술 연기
해외 항공사, 나이지리아서 여객기 운항 중단
달러 가치 치솟으면서 부채 급격히 증가
개도국 부채, 13경원 ‘사상 최대’

▲파키스탄 환전소에서 거래인이 달러를 세고 있다. 페샤와르(파키스탄)/로이터연합뉴스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달러 곳간이 바닥나면서 경제가 마비되고 있다. 원유와 의약품을 구입하지 못해 항공기가 멈춰 서고 병원 수술마저 연기됐다. 최근 달러 가치가 다시 급등하면서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5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최근 파키스탄 공장 가동이 줄줄이 중단됐다.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를 사들일 돈이 없어서다. 스리랑카 정부는 원유가 바닥나자 개인당 연료 구입량을 일주일에 20ℓ로 제한했다. 약품이 부족해진 병원들은 덜 급한 수술부터 뒤로 미루면서 버티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해외 항공사들이 달러 송금에 문제를 느끼고 운항을 중단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수입 결제 대금인 달러가 고갈되면서 정상적인 경제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들 국가의 경제가 곤경에 처한 건 한두 해 일이 아니다.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게 유지하느라 외환보유고 고갈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사이클로 달러 가치가 치솟으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무섭게 뛸수록 달러 곳간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개발도상국 달러 채권을 추적하는 JP모건 넥스트제너레이션 시장 지수는 지난달 0.4% 하락해 지난해 9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최근 연준의 금리 인상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면서 가나, 이집트, 파키스탄 등 개발도상국 통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더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다.

▲가나와 파키스탄 국채 리스크 프리미엄 추이. 단위 베이시스포인트(bp). 빨간색:가나/검은색:파키스탄. ※1000bp 넘으면 ‘부채 곤경’ 상태. 출처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존 마렛 선임 애널리스트는 “신흥국 경제는 붕괴 수렁에 빠졌고 일부 국가들은 또 다른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내몰렸다”며 “경제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통화 가치는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2020년 잠비아에 이어 지난해 스리랑카와 가나가 디폴트에 빠졌다.

자금 융통도 쉽지 않다. 현재 약 24개 국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자금조달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부채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개도국의 부채 규모는 지난해 12월 98조 달러(약 13경 원)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65%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전 대비 무려 10%포인트(p)나 커졌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의 에드 파커 애널리스트는 “정부 수입 대비 부채 상환 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빚더미에 앉은 국가들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환율을 낮추면서 통화 가치가 더 하락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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