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급격하게 좁혀졌던 크레딧 스프레드가 다시 확대 국면에 진입하는 분위기다. 증권 ·보험사를 중심으로 수요예측 미매각이 발생하는 등 약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정책자금 효과가 끝나고, 지금처럼 매크로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스프레드 축소 압력보다 상방 확대 가능성이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1일 오전 금융투자협회 최종호가수익률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과 회사채 3년(AA-, 무보증 선순위) 간 신용스프레드는 75bp를 기록했다. 신용스프레드는 지난 3거래일 연속 확대돼 0.045%p 상승했다. 신용스프레드가 장중 75bp가량 벌어진 것은 지난 2월 15일(75.3bp)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신용스프레드의 강세 폭이 둔화되면서 다시 확대 흐름에 접어든 것이다.
발행시장에서도 이슈어(Issuer)의 기세가 밀리고 있다. 코리안리재보험(AA0)은 최근 2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30년물을 발행하는 수요예측에서 2500억 원의 주문이 들어왔다. 지난해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이후 보험사의 첫 공모채 시장 발길이다. 그러나 당초 예정했던 모집액 중 830억 원의 물량이 5.48~5.50% 구간에 몰리면서 최종 금리는 상단인 5.50%에 결정됐다.
ABL생명보험도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 5년 콜옵션을 기준으로 700억 원 모집에 나섰지만, 매수 주문을 한 건도 받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보험사 회사채는 돈을 받고 사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증권사 채권도 시장의 관심에서 비껴갔다. 현대차증권은 회사채 1000억 원을 모집하는 수요예측에서 3년물에서 250억 원 미매각이 발생했다.
지난달 초 국채 금리가 급등락하는 장세에서도 크레딧 스프레드도 견조한 흐름을 유지했다. 그러나 기관들의 연초 매수 자금이 상당부분 소진되고, 1분기 말이 가까워지고 환매 물량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연초 크레딧 강세가 시들어간다는 평가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 크레딧 강세가 지난해 자금 효과도 끝나고 더이상 내려가지(좁혀지지) 못해 지금 막혀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AA- 회사채 스프레드가 40~50 수준인데, 과거 평균은 30대였다. 연초 회사채 강세가 발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수준으로 회복하진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채 시장이 과거와 같은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인은 불안정한 매크로 환경의 지속에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연구원은 “과거와 같은 평균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기업 실적, 펀더멘탈 등 매크로 경기 지표가 받쳐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 상방 확대 압력이 축소 압력보다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은 연이어 하락세다. 전날 한국기업평가는 LG디스플레이(디플)의 신용등급을 ‘A+, 안정적’에서 ‘A+,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이로써 LG디플은 국내 신용 3사로부터 모두 ‘부정적’ 등급 전망을 얻게 됐다. 시장에서는 LG디스플레이의 신용등급 또한 빠른 시일 내에 ‘A-’ 비우량 등급으로 내려올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도 SK이노베이션과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의 신용등급을 등급 하향 워치리스트에 등재했다. 시장에 비우량 등급 기업들이 늘어나면 투자자들의 크레딧 시장에 대한 심리 또한 악화한다. 신용 스프레드가 계속 확대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