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4억2000만원씩 720조
"사채 쓰면 저금리 대환도 안돼"
가파른 금리 인상에 결국 절벽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50대 자영업자 A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손님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대출을 받아 근근히 버티고 있다. 임대료는 커녕 당장 직원 월급 주기도 버거워진 지 오래다. 문제는 A 씨가 급하게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다가 한도가 예상만큼 나오지 않자 대부업까지 손을 댄 것이다. 저축은행 2곳과 대부업체 1곳 등 총 3곳에서 7000만 원의 돈을 빌린 A 씨의 평균 금리는 연 12%대에 달한다. 월 130만 원가량이 이자와 원금으로 빠져나가는 A 씨는 최근 금융위원회에서 소상공인 저금리 대환대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소식에 신청하려 했으나, 대부업 대출의 경우 갈아타기가 안 된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좌절했다.
가계 빚의 ‘약한 고리’인 자영업자와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여러 금융기관에서 빚을 진 자영업자는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고물가, 급격히 오른 금리에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한 위기에 처한 이들의 연체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가계부채의 뇌관을 흔드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6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1019조8000억 원이다.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3분기(1014조2000억 원)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돌파한 후 이번에 또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한은이 자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개인사업자대출 보유자를 자영업자로 간주하고, 이들의 가계대출(348조1000억 원)과 개인사업자대출(671조7000억 원)을 더해 분석한 결과 2020년 코로나19 발생 직후 저금리 대출을 받았던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계속되는 불경기에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높은 이자까지 떠안게 된 실정이다.
특히 A 씨의 사례처럼 전체 자영업자 중 56.4%(173만 명)는 가계대출을 받은 금융회사 수와 개인사업자대출 상품 수의 합이 3개 이상인 다중채무자였다. 사실상 자영업자 차주 10명 중 6명은 더는 추가 대출을 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대출액 기준으로는 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70.6%(720조3000억 원)가 다중채무자였다. 이들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1인당 평균 대출액은 작년 4분기 말 기준 4억2000만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막상 자영업자들이 정책금융 상품을 신청하기도 쉽지 않다. 소상공인을 위한 다양한 정책금융 상품이 있지만, 경쟁이 치열해서 순식간에 마감된다. 최근엔 온라인 신청을 받다 보니 PC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신청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이들은 빚을 내 코로나19 시기를 버텼지만, 금리 인상기에 이자 부담까지 커지면서 불법 사금융으로 빠지기 일쑤다. 최근엔 개인회생·파산 신청도 급증했다.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1~2월 개인회생 신청 누적 건수는 1만8954건에 달한다. 전년 동기(1만2973건)보다 46.1%나 늘었다. 2월 개인파산 신청 건수 역시 3448건으로 전년 동월(3025건)보다 14.0% 증가했다.
올해 하반기 코로나19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대출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조치가 종료되면 자영업발(發) 연체 대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보니 차후 만기가 돌아오면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만기 연장이나 이자 상환 유예조치가 된 채권은 서류상 정상채권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당장 수치상으로는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을 수 있다”며 “자칫 문제가 터졌을 때 그만큼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