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이 30일 국회 재투표에서 부결됐다.
이날 국회는 5월 마지막 임시국회를 열어 간호법 재의결 투표를 실시했다. 재적 의원 289명 중 찬성 178표, 반대 107표, 무효 4표로 부결됐다. 재투표에서 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로써 간호법은 양곡관리법에 이어 ‘야당 단독처리 후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는 두 번째 법안이 됐다.
간호법은 의료법, 보건의료인력지원법으로부터 간호 인력에 관한 내용을 독립시키는 법안으로, 간호사 자격과 처우 개선 등을 명시한 점이 핵심이다. 간호법은 지난달 27일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16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여당은 중재안 마련 의사를 밝혀왔지만, 야당은 논의를 마친 법안인 만큼 원안대로 처리해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소신표’를 기대하며 재의결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기도 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간호법은 정쟁과 무관하고, 정쟁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되는 민생법안”이라며 “정부‧여당도 거부만 할 게 아니라 국민을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예고했던 대로 당론으로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주부터 부결을 위한 총동원령을 강조해왔고, 이날 본회의 직전에도 “부당한 입법 폭주를 저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간호법 재의결 안건은 여야 합의로 의사일정에 상정되지 못하고, 본회의 직전 민주당 의원들의 의사일정 변경안 제출로 상정됐다.
투표 전 토론에서도 여야는 여전히 이견을 보였다. 여당 측은 간호법이 ‘갈라치기’ 법라고 반발했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은 간호법 그 자체가 아니라 간호법이 유관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는 점과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으로 재의 요구한 것”이라며 “간호법 통과 자체가 목표가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야당 의원들은 정부‧여당의 공약 뒤집기를 비판하며 간호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간호법은 윤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 공약이었을 뿐 아니라 국민의힘 21대 총선 공약이기도 했다”며 “자신들의 내세운 공약을 스스로 파기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 부정이자 국민 기만, 민주주의 파괴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간호법 거부 이유도 음해 수준의 가짜뉴스”라며 “의료인 간 신뢰‧협업을 저해한다거나 간호조무사 학력 논쟁이 간호법 반대 명분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며 지역사회 간호의 법률적 근거 마련은 당연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재의결 기준이 높았던 만큼 결과는 부결이었다.
문제는 여야 ‘강 대 강’ 대치가 여기서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과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도 예고한 상황이다. 전주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전날 “30일 노란봉투법에 대해 권한쟁의심판 효력 정치 가처분 신청을 할 예정이고, 본회의 표결 시 필리버스터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임시국회에서도 쟁점 안건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강행처리와 대통령 거부권과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을 활용한 정부‧여당의 제지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과방위원장을 사임하고,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보궐선거를 통해 신임 과방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애초 국민의힘 몫인 과방위 외에도 민주당에 배정된 교육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선출 건이 상정됐으나, 민주당이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결론 지으면서 안건에서 제외됐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맡게 될 예산결산특별위원장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도 6월 임시국회에서 선출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이날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윤관석 의원과 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보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