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이 이투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후배 양성에 대한 의지를 이같이 말했다.
이정한 회장은 금속 판재 유통 및 가공을 전문으로 하는 비와이인더스트리 대표다. 여성의 기업 경영을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시절부터 33년간 기업을 이끌어온 장수 여성기업가다. 지난해에는 제 10대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여경협) 회장에 올랐다. 여경협은 1999년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립한 국내 유일 법정 여성경제 단체다. 277만 개 여성기업을 대변하고 있다.
이 회장의 재임 기간에 여경협은 18번째 지회인 남서울지회와 일반회원제도를 신설했다. 협회 회원수는 기존의 3배로 늘었고, 미래여성경제인육성사업 신설과 여성기업주간 예산 증액으로 여성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예산이 처음으로 100억 원을 넘었다.
임기 반환점을 돌고 있는 이 회장은 여성기업가의 어려움과 앞으로 지원 방향, 남은 임기 동안의 구상안을 밝혔다.
시대가 변했다. 여성기업가라는 말이 생소하던 시절을 거쳐 여성에 대한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해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여성 인재들이 줄줄이 배출된다. 하지만 정작 창업을 꿈꾸는 여성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교육부가 발표한 고등학생 희망 직업 조사에 따르면, 남학생은 경영자ㆍCEO가 희망 직업 5위(2022년), 8위(2021년)에 올라있는 반면 여학생의 경우 20위권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 회장은 “여성이 창업하고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주변에서 남자 기업가는 많이 봤지만, 여성 기업가는 찾기도 어렵고, 성공한 혹은 유명한 여성 기업가는 손에 꼽을 정도지 않냐”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여성기업의 열악한 경영 여건과 부족한 사회적 인식 등이 여성 창업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봤다.
여성기업의 어려움은 중소기업 전체가 겪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판로확보와 자금조달, 인력부족 등 최근 중소기업을 짓누르는 다양한 악재로 인해 여성기업 역시 난항에 빠져 있다.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여성기업의 경영 여건은 예상보다 열악하다.
국내 중소기업계에서 10개 사 중 4개 사는 여성기업이지만 수출 중소기업 중에서 여성기업 비중은 8.0%에 그친다. 수출액 비중으로 보면 4.6%에 불과하다. 이 회장은 “경쟁력 있는 좋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수출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많은 여성기업들이 중기부의 수출 확대 정책 지원을 통해 초기 수출 성공 및 수출 확대에 성공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기업지원센터는 여성기업의 수출 활성화를 위해 수출 초기 여성기업을 대상으로 단계별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해외 판로를 개척하는 지원 사업이다.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제법 높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예산이 한정되다보니 많은 기업을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 이 회장은 더 많은 여성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책과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올해 ‘미래 여성경제인 육성사업’에 공을 들일 방침이다. 미래 여성경제인 육성사업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을 받아 올해 처음 실시된다. 선배 여성 CEO들이 멘토로 참여, 여성 특성화고 및 여대생들이 여성경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회장은 해당 사업을 통해 여성 기업가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업을 잘 정착시켜 예산을 키우고, 이를 발판 삼아 장기적으로 여성기업이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이번 사업은 우리 세대가 겪어온 수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후배들이 반복하지 않고 좀 더 쉽게 성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여성 CEO들의 공감대에서 시작됐다”며 “미래의 여성경제인이 될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고, 실질적인 사업 노하우를 전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연구소 예산을 확대하고 판로 지원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 회장은 “여성기업이 우리나라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라며 “이들이 우리 경제에서 해내는 역할과 그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정책 발굴은 미흡하다. 그는 “1999년에 ‘여성기업법’ 제정으로 여성기업 지원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지만, 여성기업을 경제주체가 아닌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고 지원하면서 정책적 발굴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2019년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의 부설 연구기관으로 여성기업 연구를 전담하는 ‘여성경제연구소’를 세웠지만 규모가 작아 현재 팀 단위 정도의 업무 수행만 가능한 상태다. 이 회장은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정책 마련을 위해 여성기업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ㆍ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여성경제연구소 예산 확대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여성기업의 여성 고용 비율은 약 70%다. 남성기업의 2.3배다. 여성기업이 늘어나면 여성의 일자리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저출산ㆍ고령화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이 회장은 보고 있다.
또 단기적으로는 내달 열리는 ‘제2회 여성기업주간’ 행사에 집중할 예정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개최하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작업이 선제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올해 회원사 기업 100곳 이상을 방문하려고 한다”며 “더 많은 여성기업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싶다”고 구상안을 밝혔다.
그러면서 “여성기업은 느리지만 정직하고, 탄탄하게 내실을 다지며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다”며 “여성경제연구소의 조사를 보면 여성기업인의 92% 이상이 일하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자기 일을 즐기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 열정과 의욕으로 가득한 여성기업이 만들어갈 미래를 응원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끝으로 “(임기) 마지막까지 후회없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