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 신탁 방식 재건축 바람이 거세다. 여의도와 목동 주요 단지에 이어 강남 핵심지인 서초구에서도 재건축 사업 추진을 위한 신탁사 모집 움직임이 포착됐다. 최근 공사비 증가와 이에 따른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으로 사업이 표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신탁사 참여 방식이 급부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정부도 신탁 방식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특례까지 예고하고 나서면서 신탁 방식 사업 추진에 ‘청신호’가 들어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삼풍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는 전날 재건축 사업 시행을 맡을 신탁사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공고를 조달청 나라장터에 냈다. 입찰 서류 제출은 다음 달 3일이다.
삼풍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신탁 방식 재건축 추진 배경으로 ‘빠른 사업 진행’을 꼽았다. 이 관계자는 “소유주들은 무엇보다 빠른 재건축을 원하고 있다”며 “강남 내 비슷한 규모의 단지 중 은마나 대치선경 등은 재건축을 조합방식으로 진행하면서 10~20년씩 대내·외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고 사업도 지연되고 있다. 우리 단지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고 신탁 방식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탁 방식 재건축은 신탁사가 수수료를 받고 소유주를 대신해 정비사업 시행을 대행하는 방식이다. 신탁 방식은 조합설립 과정을 건너뛸 수 있어 사업 기간을 평균 2년가량 줄일 수 있다.
때문에 신탁 방식 재건축 사업은 정비업계에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서울 내 여의도와 목동, 상계동 등 주요 재건축 단지에서 신탁 방식 재건축 사업을 위한 사업시행자 선정 움직임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여의도는 전체 16곳 재건축 단지 중 7곳이 신탁 방식을 추진 중이고, 양천구 목동 14단지와 신월시영 등 대단지도 신탁사 선정에 가세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신탁 방식 재건축이 최근 들어 주목받는 이유는 조합과 시공사 사이의 공사비 인상 문제나 조합 내부 갈등 등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최근 사업비 급등으로 사업이 중단되거나 좌초 위기를 겪는 사례가 많아졌는데 신탁 방식 재건축은 조합 방식보다 위험 관리 측면에서 유리하고, 신탁 수수료가 비싸더라도 조합 운영비용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비슷하므로 신탁 방식 선호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국토교통부가 신탁 방식 재건축에 대한 정책 지원을 시행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신탁사가 정비사업을 시행할 때 특례를 줘 신탁방식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미 신탁사에 정비구역 지정 제안 권리 부여와 정비구역 지정 및 사업계획 수립을 동시에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다. 법사위가 법안을 반려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는 만큼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대형 신탁사 관계자는 “(법안 통과 시) 신탁사 입장에서도 수주 확정을 앞당길 수 있고, 정비구역 지정 신청 작업도 기존에 조합이 주도하던 것을 넘겨받게 되므로 더 전문적이고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므로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다만 과거 서초구 방배7구역이나 강남구 압구정5구역, 강동구 삼익그린2차 등 신탁 방식에서 재차 조합 시행으로 ‘유턴’한 사례도 적잖은 만큼 이번에도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비는 오르고, 집값은 내리자 재건축 조합이 안전 확보를 위해 신탁사를 최근 들어 대거 찾는 것으로 본다”며 “향후 집값이 재차 급등하는 등 시장이 정상화되면 언제든 조합 시행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