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사는 박한슬(28) 씨는 8월 다가오는 빌라 월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결국 1년 더 월세 계약을 연장하기로 했다.
박 씨는 올해로 자취 3년 차다. 조그마한 원룸 빌라에서 월세로 자취를 시작할 당시 그에게는 '다음번 집은 전세로 가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이에 전세 보증금을 조금이라도 더 마련하기 위해 적금 한도도 조금씩 높여 왔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최근 청년층을 대상으로 빌라 전세사기 문제가 확산하자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전세 제도 자체에 대한 이해도 아직 부족해 섣불리 전세를 선택할 수 없었다.
박 씨는 "전세사기로 고통받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을 최근 뉴스를 통해 자주 듣다 보니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가뜩이나 전세도 처음이라 차라리 전세사기 문제가 조금 잠잠해질 때쯤 천천히 알아보는 게 더 안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월셋값도 10만 원 정도 더 올랐지만, 오히려 돈을 더 내더라도 안전하게 사는 게 더 속 편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전셋값 하락이 이어지면서 계약 만료 이후에도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 문제도 심각하다.
배선우(27) 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당장 돌려줄 수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경기 구리시에서 빌라 전세로 살고 있던 그는 올해 5월 살고 있던 집 전세 계약을 마치고, 새 전셋집을 알아보려던 참이었다.
배 씨는 "계약 만료 3개월 전 집주인에게 나가겠다고 미리 말을 해놨다"며 "그런데 어느 날 집주인이 다시 연락이 와서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는다. 보증금 마련이 어려울 거 같으니 새집을 천천히 구할 수 없겠냐고 했다"고 말했다.
전셋값은 배 씨가 처음 입주했던 2년 전보다 4000만 원가량 낮아진 상황이었다. 신혼집으로 청약을 받아놨던 아파트 입주 기간도 남았고, 집주인도 낮아진 시세 차액 4000만 원을 미리 돌려주겠다고 약속해 배 씨는 결국 6개월 단기 연장을 하기로 했다.
최근 대표적인 서민 주거형태로 꼽혔던 빌라(연립·다세대 주택) 전세에 대한 두려움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빌라 전세는 그간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 젊은 청년들에게는 목돈을 마련하고, 향후 더 나은 집으로 올라서기 위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전세사기 여파와 더불어 역전세 문제도 커지면서 빌라 전세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실제로 빌라 전세 거래량은 올해 감소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상반기 서울 빌라 전세 거래량은 총 3만254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세사기 문제가 본격화되기 전인 전년 동기(4만8718건) 대비 약 33% 급감했다.
업계에서는 주거 사다리였던 빌라가 불신의 대명사가 된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시세 파악이 어렵다는 점을 꼽는다. 실제로 인천 미추홀구, 서울 강서구 등 전세사기가 속출한 곳에서는 피해자들이 일대 빌라 매매가와 전세가 시세를 모른다는 점을 노렸다.
이에 최근에는 오히려 시세 파악이 쉬운 소형 아파트 월세로 발걸음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 조사에 따르면 1~5월 서울 전용면적 60㎡ 이하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총 5만9324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월세 거래량은 2만9604건으로, 비중이 50%에 달했다. 이는 해당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래 가장 높은 비중이다.
황한솔 경제만랩 리서치연구원은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전세사기와 역전세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이에 소형 아파트 월세 선호현상이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전세사기로 인한 불안감이 전세 제도 전체로 퍼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국민의 안정적인 주거권 실현을 위해 모든 역량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