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성장률이 고금리의 장기화 속에서 침체하는 가운데 상장사 두 곳 중 한 곳의 부채비율이 1년 전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유·화학 업종의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과 제품 수요 급감 등으로 재무 부담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 본지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전날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상장사 1915곳의 재무제표 주석을 분석한 결과 부채비율이 1년 전보다 늘어난 곳은 875곳으로 집계됐다. 1년 사이 상장사 두 곳 중 한 곳의 부채비율이 치솟은 셈이다.
부채비율은 기업의 부채 총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으로 타인자본 의존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부채비율이 200%라고 하면 기업이 조달한 자금의 2배 이상을 남의 돈으로 조달했다는 의미다. 통상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설 경우 재무 안정성이 불안정하다고 판단한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통틀어(완전잠식 기업 제외)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효성화학(8937.65%)으로 1년 전 773.02%보다 10배 넘게 뛰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2631.81%였던 부채비율이 올해 들어서도 꾸준히 급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학 3사인 효성첨단소재, 효성티앤씨, 효성화학을 보유한 효성그룹의 2분기 실적은 일제히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효성첨단소재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0.1% 급감하고, 시장 컨센서스(540억 원)도 밑도는 486억 원이었다. 원사, 타이어코드 등을 비롯한 주력제품 이익이 크게 줄어든 영향이다. 효성티앤씨와 효성화학의 영업이익 역시 전년 대비 각각 26.2%, 51.6% 급감했다.
석유화학 업황은 지난해부터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데다 중국 기업과의 가격 경쟁력, 수요 감소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 부문은 중국 시장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중국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부동산 위기까지 겹치는 점이 우려되고 있다. 효성화학 외에도 이수화학(200.31%→256.33%), 누보(200.31% →256.33%) 등의 부채비율이 높아졌다.
이어서 한창(6030.46%), 아시아나항공(2097.54%), 카나리아바이오(1642.09%), 롯데관광개발(1642.09%), 코다코(1578.76%) 등의 부채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서비스, 바이오, 화장품 등 내수와 관련된 산업에서 부채비율이 모두 악화한 모습이다.
건설, 증권 등 금융계열사의 부채비율도 큰 폭 늘었다. 지난해 급격한 금리 인상의 여파로 금융자산에서 평가손실이 발생하고, 건설 수주 산업의 특성상 이자 조달 비용이 증가해 수익성이 감소한 것이다.
건설 업종 내에선 SGC이테크건설(136.64% →305.18%), HL D&I(287.01%→316.28%) 등이 300%를 넘어섰다.
기업의 매출액과 외형이 성장해도 영업실적이 악화하면 부채비율은 확대하게 된다. 손에 남는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줄어들면서 물건을 팔아도 남는 게 없는 상황이 지속하는 것이다.
코스피 상장사 12월 결산 615개사 중(금융, 분할·합병·신규설립 등 제외)의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53조1100억 원으로 전년보다 52.45% 감소했다. 순이익도 37조6900억 원으로 57.94% 줄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개선되려면 경기 체질부터 개선해야 하는데, 대외 영업력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통화긴축은 지속되고, 원자재 가격과 유가는 급등하면서 미·중 공급망은 흔들리는 중”이라며 “내년에도 우리 경제에서 활기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