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대우건설 공모회사채 50회차는 장외시장에서 민평(민간 채권 평가사가 평가한 고유 금리) 대비 75bp 가까이 높은 연 5.742%에 거래됐다. 불과 4거래일 전 대우건설 56회차가 연 7.100% 고금리에 거래되고도 여전히 유통금리가 5% 아래로 내려오지 못한 것이다. 내년 3월 만기를 맞는 롯데건설의 5년물 회사채도 이달 13일 민평 대비 51bp 높은 연 5.180%에 유통됐다.
유동성 리스크가 고개를 들면서 자금시장에 또다시 냉기가 번지고 있다. 국채 금리는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기업어음(CP)금리도 3월 이후 처음으로 4%대에 올라섰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길이 좁아지면서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못하고 CP, 전환사채(CB) 등 단기 사모사채 시장으로 내몰리는 기업도 나온다. 부동산 시장의 저조한 분양 흐름이 지속하면서 1년 전 정부가 긴급히 내놓았던 유동성 지원 약발이 끝나고 자금 시장 경색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채권 시장의 돈 가뭄이 심화하면서 건설사들의 발길이 줄줄이 CP 시장을 향하고 있다. 8월 한 달 동안 CP 시장을 찾은 건설사는 롯데건설, 코오롱글로벌, 두산건설, 대우건설, 태영건설 등 총 5곳에 달한다. 이 기간 공모채 시장을 찾은 건설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채권 시장에서 건설사의 유통금리가 약세를 보이는 모습에 선뜻 공모채 발행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이중 코오롱글로벌과 대우건설은 한 달 사이에 CP 시장을 두 차례나 찾았다. 코오롱글로벌은 4일과 9일에 각각 100억 원씩 총 200억 원의 자금을 3개월물 CP로 발행했고, 같은 달 11일과 24일에는 대우건설이 각각 200억 원씩 총 4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CP로 발행했다.
그마저 사정이 여의치 않은 기업들은 사모 CB 시장으로 몰린다. 기업에 있어 CP와 CB 발행 여력을 가르는 것은 신용도다. CP와 CB 모두 기업이 단기간에 부담 없이 차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CP 발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신용등급을 보유해야 한다는 점에서 CB와 차이가 난다. CB는 대부분 신용등급조차 받지 않은 기업들이 발행한다.
동부건설은 지난 6월 신용등급을 보유하고도 이례적으로 CB시장을 찾아 250억 원 규모 자금을 발행했다. 동부건설의 장기 신용등급은 ‘BBB, 안정적’, 단기 신용등급은 A3다. 작년 말 신용등급 전망이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하향 조정된 동부건설은 추가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 조달에 나서기가 재무적으로 부담이 됐던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단기 또는 사모 시장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차입금을 끌어오더라도, 기업들로서는 금리가 치솟는 속도를 따라잡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은 장중 연고점인 연 3.921%까지 올랐고, 1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5.0bp 오르면서 4%대를 돌파했다. 지난 5월만하더라도 연 3.2%대에 머물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일 연고점을 키워가고 있다.
CP금리도 오름세다. 금융투자협회 최종호가수익률에 따르면 CP금리는 이날 8거래일째 4%대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연 4.02%에 마감했다. 지난 11일 약 4개월만에 다시 연 4%대에 올라선 뒤 13일과 18일에도 각각 1bp씩 또다시 올랐다. 지난 3월 22일 연 4.02%에서 하락 마감한 뒤 약 6개월 만에 또다시 연 4.02%를 기록한 셈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서는 기업 자금난에 대해 “이제 시작”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긴급 유동성 지원으로 연장됐던 6개월 또는 1년짜리 브리지 대출이 내년 상반기에 대거 몰려있기 때문이다. 한 중형 증권사 PF 임원은 “새마을금고, 농협 등 선순위 금융기관들은 내년부터는 더는 연장 같은 거 없이 되든 안 되든 간에 공매 날리겠다고 엄포하고 있다”라며 “분양 시장이 워낙 어렵고, 이들도 먹고살게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 더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스신용평가의 한 신용평가사는 “국제 유가 인상 여파와 일본의 통화정책 변경,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상으로 금리 상승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통시장 회사채 내에서도 건설사들의 약세 부담이 두드러지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라며 “건설사의 유동성 어려움은 올해 하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