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연일 고공 행진하면서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유가 흐름에 민감한 국내 업계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9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0.92달러(1.0%) 내린 배럴당 90.79달러를 기록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1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95.3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자발적 감산을 결정하면서 국제유가는 나날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공급 차질 우려가 심화하며 일각에서는 유가가 연내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가능성도 나온다.
통상 유가가 오르면 수출기업에는 악재다. 한국무역협회가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4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는 90.2로 집계됐다. EBSI는 다음 분기 수출 경기에 대한 전망을 나타내는 지표로, 100보다 낮으면 수출 경기가 전 분기보다 악화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유가 상승이 수요 부진, 원가 상승, 경기 둔화의 원인이 될 것으로 지목했다. 김나율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수출 기업은 수요 부진, 원가 상승, 단가 인하 압력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수입 원자재 할당 관세 적용을 연장·확대하고, 수출 기업에 무역 금융, 수출 바우처 등 실효성 있는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미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업계의 고민 역시 깊어지고 있다. 유가가 오르면 원재료인 납사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한다. 실제로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로 꼽히는 에틸렌 스프레드(마진)는 톤(t)당 137달러 선까지 내려오며 손익분기점인 300달러를 크게 밑돌고 있다.
중장기적 전망도 어둡다. 한국기업평가는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중장기적 위험 요인으로 △플라스틱 사용 규제 △중국의 저성장 진입 △NCC의 열위한 원가 경쟁력 등을 꼽았다.
‘명절 특수’를 노리던 항공업계도 유가 상승이 달갑지 않다. 연료비가 늘면 기업들의 영업비용이 큰 폭으로 증가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뚫으며 연고점을 재차 돌파한 점도 비용 부담을 더한다.
반면 정유업계는 수익성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이 급등하면서 실적에 청신호가 켜졌다. 일반적으로 정제마진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5달러 수준인데, 이달 셋째 주 기준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15달러에 달하며 연초 대비 급등세를 보였다.
상반기 부진한 실적을 냈던 주요 정유업체들은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2분기 1068억 원의 영업손실에서 3분기 6936억 원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에쓰오일(S-OIL)도 같은 기간 364억 원에서 6078억 원의 이익을 거둘 전망이다. GS칼텍스도 한 분기 만에 흑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연말로 갈수록 계절성 요인이 더해지며 국제유가 상승세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지만, 경기 둔화가 여전하고 유가 흐름의 불확실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