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의 폐업 신고가 17년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양실적 감소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PF보증 확대에 나섰지만 미분양, 고금리 부담이 업계 전반을 짓누르고 있어 부실화 우려가 여전한 양상이다.
12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9월 종합건설업체의 폐업 신고 건수(변경·정정·철회 포함)는 총 41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동기의 211건 대비 두 배 가까이 많고, 2006년 이래 최대치다.
이달 들어서도 16건의 폐업 신고가 접수됐는데,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9건)보다 빠른 속도다.
업계에서는 폐업 급증의 원인으로 분양 실적 감소를 꼽는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이 기간 분양 물량은 13만5181가구로 지난해 동기(25만2190가구) 대비 반토막이 났다. 연말까지 예정된 분양 물량을 더해도 24만1608가구에 그쳐 지난해(37만1052가구) 보다 턱없이 적다.
미분양 우려도 여전하다. 지난 7월 이후 전국 미분양 주택 수가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으나 분양 경기의 추세적 반전을 단정 짓기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건설업 특성상 분양 실적, 원자재값, 전쟁 등 외생변수를 통제하기 어려운 점도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부동산 PF 시장이 경색된 점도 악재다. 최근 PF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유동성 확보 어려움이 커진 탓이다. 정부가 'PF사업장 정상화 지원펀드'를 가동하고 대출 보증 규모를 25조 원으로 확대하는 구제안을 내놨지만 역부족이란 게 업계 내부의 목소리다.
한국기업평가가 'D(Default)의 공포' 보고서에서 분석한 21개 건설사의 8월 말 기준 PF우발채무 규모(정비사업 제외)는 22조8000억 원으로, 2022년 6월 말 대비 약 29% 증가했다.
다만 과거보다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 대응 체력이 향상된 점을 고려할 때 업계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한기평 측의 분석이다. 기업 규모, 현금성 자산 보유량에 따라 중견·중소 건설사 등의 유동성 위기가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서채훈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건설사들의 위기대응 컨디션이 이전보다 올라간 만큼 과거 금융위기 수준으로 부실화가 번질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업황 자체가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고 분양, 원자재값 등 통제가 어려운 외생변수로 인한 변동성이 존재하는 만큼 부실 우려는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불거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인한 영향에 대해서는 "양국의 갈등이 향후 확전으로 전개돼 세계 경제 위기로 연결되면 방향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현 단계에서는 건설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이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