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먼저 받은 보상금 공제하고 지급”
1970년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실형을 살았던 고인의 유족에게 3억5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9단독(재판장 김병휘 판사)은 1977년, 1979년 두 차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고인 A씨 사건에 대해 배우자와 자녀 등 상속인 7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위헌, 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체포, 구금돼 수사를 받고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복역함으로써 정신적인 손해를 입었다”면서 “피고 대한민국은 국가배상법에 따라 망인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형사배상금에 관해서는 “고인의 나이, 직업, 구금 기간, 그로 인해 입었을 정신적 고통의 정도, 불법행위의 내용 및 중대성을 참작했다”면서 “장기간 배상이 지연돼 약 40년 이상 경과하면서 위자료 산정 기준이 되는 국민 소득 수준이나 통화가치가 크게 상승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고인이 된 A씨는 생전 1977년, 1979년 두 차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다.
첫 번째는 1946년 대구에서 벌어진 10·1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책 ‘건국전야의 비화’를 4000부 제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책에서 민중들의 정당한 투쟁이 공산당 지령에 따라 발생한 것처럼 왜곡, 조작되고 있다는 점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두 번째 기소는 한 교회 연단에 올라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는 내용의 구국선언서 등을 낭독해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혐의였다. 이 기소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같은 해인 1979년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되면서 대법원이 면소 판결을 내렸고 A씨는 약 5개월 만에 석방됐다.
검찰은 1995년 사망한 A씨 사건을 2017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첫 번째 기소 건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고,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A씨 유족은 이를 근거로 이듬해 정부에 보상을 청구해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구금보상금’ 1억7500만 원을 받았다.
‘국가배상법’을 토대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선고를 내린 이번 판결과는 별개의 보상이다.
재판부는 이에 관해 “같은 원인에 대해 다른 법에 따라 손해배상을 받을 때는 먼저 받은 보상금을 공제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앞서 지급한 보상금 1억7500만 원을 위자료 원본 3억5000만 원에서 공제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