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을 좌우할 현안 법안들이 1년 가까이 국회에 발이 묶이며 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올해 초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발의된 분양가상한제 주택 실거주 의무 폐지법(실거주의무 폐지법)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부담금 완화안(재초환 개정안), 1기 신도시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1기 신도시 재건축 특별법(노후도시특별법)은 21대 국회 마감을 앞두고도 논의만 거듭하고 있다. 전문가는 정책 신뢰성 저하와 함께 정치적 목적으로 발의된 부동산 법안이 시장을 ‘희망 고문’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따르면 실거주의무 폐지법과 재초환 개정안, 1기 신도시 재건축 특별법 등은 여전히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앞서 2~3월 여당을 중심으로 발의됐지만, 1년 가까이 공회전만 하는 셈이다. 연내 법안 처리를 위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국토법안심사소위는 22일과 29일, 다음 달 6일 세 차례만 남았다.
3개 법안 통과가 지지부진하자 시장은 일찌감치 움츠러들었다. 특히 실거주의무 폐지는 서울 내 주요 단지 매매에 직접 영향을 준다. 하지만 연내 불발 가능성이 커지면서 분양·입주권 거래는 하반기 들어 줄곧 내림세를 기록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개정안 영향을 받는 단지는 전국 66곳, 약 4만4000가구 규모에 달한다.
만약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지 않으면 전세입자를 받아 잔금을 충당하려던 분양자들은 최악의 경우 계약 해지도 고민해야 한다. 서울에선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과 은평구 DMC파인시티자이 등 대단지가 연말 전매제한이 풀려도 실거주의무가 남아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분양권 거래량은 하반기 급감 중이다. 이날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분양권 거래량은 6월 88건을 정점으로 7월 76건, 8월 57건, 9월 33건으로 매달 줄고 있다. 신고기한이 남은 10월 역시 이날 기준으로 18건에 그쳐 9월 거래량을 밑돌 전망이다.
아울러 재초환 개정안 통과도 불투명해지면서 서울 내 정비사업 속도를 늦추고 있다. 공사비가 급등한 상황에 재초환 부담까지 남으면서 사업성이 악화하자 재건축 사업이 줄줄이 멈춘 것이다. 이 법안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면제 기준을 기존 3000만 원에서 최대 1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0년 이상 장기 보유한 조합원은 재초환 부담금을 최대 50%까지 감면한다.
실제로 재초환 부담금은 조 단위로 빠르게 늘고 있다. 그만큼 사업성은 악화하면서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도 늦어지는 상황이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와 서울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8월 말 기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40개 재건축 조합에 통보한 재건축부담금 예정액은 2조5811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6월 말 28개 단지(1조5022억 원) 대비 12개 단지(1조789억 원) 늘어난 규모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개정안과 관련해 “시에서 적극적으로 개정을 요청한 바 있다. 시민 부담이 줄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밖에 1기 신도시 재건축 활성화를 도울 특별법 역시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이 법안은 택지조성사업 완료 후 20년 이상 지난 100만㎡ 이상의 택지 등 노후계획도시를 대상으로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해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1기 신도시인 분당과 평촌, 일산, 산본 등이 우선 적용 대상으로 거론된다.
해당 특별법은 여야에 이어 대통령실까지 가세해 통과를 독려하고 있다. 세 법안 가운데 연내 통과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1기 신도시 특혜 논란과 지방 역차별 문제 등이 확산하면 논의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전날 1기 신도시 특별법 처리 조건으로 지방 구도심 재정비 지원법(도시재정비촉진법)을 함께 통과시키자고 했다.
서진형 공정경제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국민으로선 정부가 정책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입법화가 안 되면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정부를 믿고 부동산을 매수한 사람들은 정책 신뢰성이 하락으로 반감도 크다”며 “1기 신도시 특별법의 경우 용적률 상향 등의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미흡하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해당 지역 주민을 희망 고문하는 상황만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