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경영 미참여 등 4개 '예외 조항' 미충족 시 총수 지정
국내에서 설립한 법인의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국인의 동일인(그룹 총수) 지정 기준이 마련됐다.
매년 5월 대기업집단(자산총액 5조 원 이상) 지정 시 국내 계열사 범위가 동일하지 않거나, 친족 등 특수관계인이 국내 계열사에 경영 참여하면 외국인도 동일인으로 지정돼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를 받게 된다.
해당 제도 개선 논의를 불러왔던 미국 국적인 쿠팡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동일인 지정을 피할 가능성이 커졌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 시 동일인을 판단하는 기준을 정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28일부터 내년 2월 6일까지 입법예고하고 내년 상반기 중 개정을 완료한다고 27일 밝혔다.
동일인은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로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와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진다. 동일인은 자연인(사람) 또는 법인으로 지정될 수 있는데 자연인이 동일인이 되면 본인을 포함한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 특수관계인 범위 등이 달라지게 된다.
이번 개정안은 경제 글로벌화 심화로 외국인이 지배하는 법인이 한국에서 설립되는 사례가 증가하는 가운데 외국인의 동일인 해당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안은 우선 동일인 판단의 일반원칙으로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을 그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보되, 그러한 자연인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해당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국내 회사나 비영리법인 또는 단체를 동일인으로 보도록 했다.
개정안에는 기업집단 범위에 차이가 없고 친족 등 특수관계인과 계열사 간 출자·경영·자금거래 관계가 단절돼 있는 경우 법인을 자연인이 아닌 동일인으로 볼 수 있는 예외요건도 마련됐다.
즉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보든 법인으로 보든 국내 계열회사의 범위가 동일한 기업집단이고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고 △해당 자연인의 친족이 계열회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며 △해당 자연인 및 친족과 국내 계열회사 간 채무보증이나 자금대차가 없으면 동일인을 법인으로 지정한다는 것이다.
이들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외국인이더라도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겠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개정안이 이대로 시행되면 제도 개선 논의를 불러왔던 대기업집단인 쿠팡 동일인은 김범석 의장이 아닌 법인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의장은 쿠팡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에 해당하지만, 동일인 지정의 예외 조항을 모두 충족할 가능성이 커서다.
김 의장은 현재 최상단 회사인 쿠팡Inc를 제외한 국내 계열사에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김 의장의 동생 부부가 쿠팡 계열회사에 재직하고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임원에 해당하는 직급이 아니어서 예외 조항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부부가 쿠팡Inc 주식 24만 주 정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쿠팡Inc는 미국 시장에 상장된 미국 법인이라 '국내 계열회사 출자'를 금지한 조항도 충족한다.
다만 알려지지 않은 자금 대차나 지분 보유 현황이 향후 확인되면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 여지는 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쿠팡 관련해 새롭게 확인해야 할 사실관계가 여러 개가 있어 현재로서는 쿠팡 동일인을 누구로 지정할 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 국적의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해 각종 규제를 적용하면 통상 마찰로 번질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앞서 미국 정부는 공정위의 외국인 동일인 총수 지정 계획에 대해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를 통해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공정위의 결정사항이라 현재로선 공식 입장이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