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환자 진료하며 고소당할 걱정…정당한 의료행위는 사법적 판단 대상 아냐”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의료진의 응급조치를 사법적으로 판단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응급실에 다녀간 환자의 예후가 나쁠 때 의사가 법적 시비에 휘말리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단 주장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27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진의 응급조치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법원은 응급실에서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한 응급의학과 전공의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최종 선고했다. 당시 1년 차였던 해당 전공의는 환자에게 흉부 CT검사 등 추가 진단검사를 하지 않아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적용됐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응급 환자가 죽으면 막대한 비용을 청구 당하고 형사책임까지 지는 나라에서 제대로 응급의료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응급의학과 의사는 짧은 시간 내에 모든 능력을 투입해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는 사람들이지, 신이 아니다”라며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는 없으며, 응급 상황은 사법적으로 잘잘못을 판단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응급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법원의 판단은 문제가 있다”라면서 “응급실에서 진료할 수록 사법적 리스크에 노출된다면, 방어적인 진료가 확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인정받기 위해 과도한 검사를 시행하면 의료비가 폭증해 국민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의료진은 환자와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호소했다.
박단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내가 그 상황에 놓였어도 같은 조치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교과서적인 치료에도 5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라며 “최선을 다했음에도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기관삽관 및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가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반혼수 상태에 빠진 사건에서 학교법인이 환자에게 위자료 등 명목으로 5억7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란 자극적 단어를 쓰면서 구조적 문제를 의료진 탓으로 돌리고 있단 지적도 나왔다. 국회는 2021년 7건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응급의료기관의 장이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수용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해당 법률의 골자다.
이 회장은 “응급실 뻉뺑이란 악의적 용어를 내세워 ‘이송 거부 금지’란 말도 안 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응급의료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응급의료진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말”이라며 “적정 병원으로 이송하는 시스템, 최종 치료 가능한 병원이 준비됐는지 여부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의료계는 의료진의 의료행위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3조에 따르면 응급의료로 인해 응급환자가 사상에 이른 경우 의료진에 대한 형은 ‘재량’으로 감면할 수 있다. 형을 감면하도록 수정한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의선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대외협력이사는 “의료진은 사회안전망의 일원이란 생각에 자부심을 품고 일한다”라며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고 소송에 걸리고, 패소하지 않더라도 수년간 법정 다툼으로 정신적 금전적 스트레스를 얻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지켜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