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에 묻힌 ‘필수의료 패키지’…구체화 착수해야

입력 2024-03-0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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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개혁 안 하면 의사 많아도 소용없어”…연구자 한목소리

▲7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개최한 ‘의사수 추계 연구자 긴급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hsj@)

의과대학 인원 증원을 주장한 보고서를 작성했던 연구자들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한 구체화 작업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를 놓고 갈등에 매몰돼, 정작 중요한 사안인 의료 개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우려다.

7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의사 수 추계 연구자 긴급 토론회’를 개최하고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제시한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 자리에는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가 참석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연구자들은 향후 국내 의사 수가 부족해진다는 전망을 제시한 보고서를 2020~2023년 사이에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지난달 의대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근거로 활용됐다. 연구자들은 정부가 복잡한 변수와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한 연구의 극히 일부만을 인용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계획과 함께 △의료 인력 공급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확보 △보상체계 정비 등을 골자로 하는 의료 정책 개선안을 발표하며 이를 추진하기 위해 10조 원 이상의 재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사 단체들은 의대 증원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의사 달래기’ 당근책이라며 외면하고 있다.

이날 연구자들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취지와 방향성에 공감했다. 현재 의료체계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인력과 보상체계에 대폭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중론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병행해야 실효성이 있다는 전망에도 동의했다.

오주환 교수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담긴 의료사고안전망, 보상체계와 관련된 대안에 약간의 흠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정책 방향성은 훌륭하다”라며 “구체적인 계획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의대 증원에 대한 충돌이 너무 심해서 정작 필요한 논의는 시작도 못 하는 상황”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권정현 박사 역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의 구체성이 부족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적합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라며 “의대 정원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되면서 지방의료, 보상체계 등에 대한 공론의 장이 열릴 기회가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적절한 보상체계 구축이 시급한 논의로 강조됐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 행위마다 보상을 지불해 과잉진료를 유발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와 같이 수요가 줄어드는 필수과 의사들은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것도 한계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로 의사가 몰리는 현상도 행위별 수가제가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의사들이 정부와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는다면, 지방의료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홍윤철 교수는 “아이가 줄어도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의사들이 수입이 일정 수준 보전돼야 한다”라며 “생명을 다루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데 차별이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아·청소년과 환자와 내과 환자를 보는 일에 대해 적정한 가치를 책정하는 ‘가치기반 지불보상 체계’로 전환해야 필수의료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의사 단체가 반대 중인 ‘혼합 진료 금지’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하다. 이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포함된 내용으로, 건강보험 급여 진료와 비급여 진료를 함께 시행하는 방식이다. 일부 의사들은 정부가 의사와 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실손보험사의 이익을 보호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다만, 그간 혼합 진료는 백내장 수술에 고가의 비급여 재료를 사용하거나, 도수치료를 불필요하게 남발하는 등 병원 수입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실손보험 가입자 대상 과잉진료가 만연해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된다는 우려도 컸다.

신영석 연구위원은 “환자의 치료에 필요한 비급여 항목은 혼합진료가 당연히 유지될 것이다”라며 “마치 정부가 혼합 진료를 전면 금지하는 것처럼 확대 해석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분적으로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 등 그간 필요 이상으로 남발해 국민의 의료비지출을 늘린 항목을 눈여겨본다는 취지”라며 “현재는 치료 목적과 관련이 있어도 건강보험 비급여에 해당하는 항목이 있어,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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