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능력ㆍ포용력 갖춘 리더…성과 비결은 ‘적극성’
“여성, 자신만의 강점 바탕으로 자신감 갖는 게 중요”
디지털사업그룹 목표는 “대면 뛰어넘는 비대면 영업”
“자기 분야에서 성과가 있으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KB국민은행에서 내부 승진으로 부행장 자리에 오른 첫 여성 임원, 곽산업 디지털사업그룹 부행장이 밝힌 성공의 비결이다.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로 통하는 곽 부행장은 국민은행 여성 임원 3명 중 유일한 ‘정통 KB우먼’이다. 스마트 마케팅, 디지털 마케팅 등 마케팅 한 분야를 판 그는 1987년 국민은행에 입행한 지 37년 만에 ‘은행의 별’이 됐다.
특히 타 은행 대비 상대적으로 여성 임원 배출이 늦었던 국민은행에서의 첫 내부 출신 승진자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올해부터 디지털사업그룹 대표를 맡아 KB스타뱅킹과 KB부동산 등 디지털 플랫폼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곽 부행장은 최근 본지와 만나 은행에서 직무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성과를 낸다면 성별에 상관없이 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
유리 천장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여성 리더’만의 강점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바로 포용력과 소통 능력이다. 그는 “요즘 20~30대 직원은 ‘미래에 내가 팀장, 부장이 될 수 있을까’보다는 ‘당장 지금의 내가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성향이 있다”며 “이런 직원들을 따뜻하게 다독이고,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역량 수준을 정확히 인지하도록 돕는다는 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곽 부행장은 직원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 업무방식을 선호한다. 개인마케팅본부장 시절, 직원들 사이에 의자를 하나 놓고 앉아 사안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묻곤 했다. 그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의견이 많이 나왔다”며 “물론 아이디어 중에는 당장 실행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공부도 많이 되고, 또 ‘나의 고민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의 업무 방식으로 팀원들과 이뤄낸 성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22년 말 진행한 ‘한정판 다이어리 키트 이벤트’다. KB스타뱅킹 이용 고객이 입출금 알림 등 미션을 수행하면 제공하는 리워드로, 6개월에 걸쳐 여성 팀원 4명이 기획한 아이디어였다. 당시 개인마케팅본부장이었던 곽 부행장과 임원들의 첫 판단은 “안 될 것 같다”였다. 그는 예산이 많이 들어 실패 시 리스크가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당시 곽 본부장의 최종 결정은 “해보자”였다. 실패 또한 팀원들의 경험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부행장을 찾아 “실패하면 다른 것으로 최선을 다해 커버하겠다”며 “기회를 달라”고 읍소했다.
결과는 대성공. 무려 80만 명에 달하는 고객이 몰렸다. 한 이벤트에 응모한 고객 중 최대 규모였다. 곽 부행장은 “의사결정자들은 늘 자신의 경험만을 가지고 결정하고 통보하곤 하는데, 직원들에게 맡기면 더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팀원들에게 졌을 때의 행복감이 되게 오래 남더라”라며 미소를 보였다. 이후 해당 팀은 지난해 연말에도 업그레이드된 다이어리 키드 증정 이벤트를 실시했다. 올해 연말에도 진행할 예정이다.
곽 부행장의 또 다른 성과는 온라인 마케팅의 개인화다. 고객관계관리(CRM)이란 고객 정보를 수집, 분석, 활용해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솔루션으로, 대면 영업에서 중요한 고객 관리 방법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가 스타뱅킹 플랫폼 담당 팀장이던 2012년, 모바일이나 인터넷 뱅킹을 통해 고객과의 1대1 접점을 만드는 비대면 CRM은 ‘없는 영역’이었다.
팀원들과 함께 6개월간 전산 담당 부서 설득 과정 등을 거쳐 e-CRM을 구축했다. ‘전 계좌 조회’ 화면에 만기가 도래한 상품, 가입 추천 상품, 거래 정지나 휴면 전환을 앞둔 계좌 등 고객에게 개인화된 내용을 담았다.
팀원들과 신규 서비스를 만든 이 같은 경험은, 그가 ‘제비’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배경이다. 2012년 팀장 시절, 그가 ‘박씨’ 대신 ‘일’을 많이 물고 온다면서 한 팀원이 ‘제비’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e-CRM은 팀의 기존 역할을 뛰어넘는 업무였기에 고단했지만, 고객 편의를 위해 기꺼이 맡았다.
곽 부행장은 “일이 많이 주어졌을 때 바로 ‘못 한다’며 쳐내기보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예컨대 위에서 ‘누가 이 일을 할래’하고 물어보면 ‘제가 해보겠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도와주십시오’라는 태도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곽 부행장은 여성 직원들에게 자신이 가진 강점을 최대한 살릴 것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간혹 ‘여성인데 남성처럼 일한다’는 말을 칭찬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다움’을 경쟁력으로 보는 것인데, 이런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특장점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자신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잘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곽 부행장이 마케팅 본부 팀장이던 2012년에는 여성 팀장이 별로 없었던 탓에 경영진 간담회나 브리핑에서 입을 열면 늘 주목받았다. 그는 이를 ‘기회’라고 보고 회의 때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생각을 자신감 있게 표현했다. 곽 부행장은 “누군가가 알아서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마음보다 스스로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조직 내 문화, 제도 등도 조직의 성별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권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육아 휴직 이후 복직할 때 충분히 직무를 따라갈 수 있게끔 복직 이전의 훈련, 교육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 없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육아휴직을 많이 쓰는 여성 직원들이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이유라고 봤다.
곽 부행장은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여성은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로 승진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녀 출산으로 인해 생기는 경제적 부담을 보완해주는 프로그램, 복직 전 교육 프로그램 등 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그가 이끌고 있는 ‘디지털사업그룹’은 곧 닥쳐올 금융의 변화를 준비하기 위한 조직이다. 그는 3~5년 안에 대면 창구를 찾던 개인 고객 대부분이 모바일, 인터넷 뱅킹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곽 부행장은 “지금도 금융 상품 판매의 70~80%가량이 비대면으로 이뤄진다”며 “디지털 인프라를 더 고도화하고, 이에 맞는 상품 라인업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사업그룹 대표로서의 목표는 국민은행이 기존에 갖고 있던 대면 영업에서의 경쟁력을 비대면에서도 갖추는 것이다. 그는 “국민은행의 조직력과 축적된 대면 영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객이 대면으로 업무를 보는 것 이상으로 만족할 수 있게끔 디지털 인프라 프로세스를 갖추고, 상품을 제시할 것”이라며 “비대면 영업력을 대면 영업력 이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최대 미션”이라고 했다.
국민은행 부행장으로서의 가장 큰 목표는 고객 신뢰 확보다. 곽 부행장은 “국민은행 하면 신뢰, 안정성이 떠오르는데, 결코 낡은 이미지라고 보지 않는다. 금융기관의 근간이기 때문”이라며 “마케팅, 플랫폼 등 모든 부문에서 고객 신뢰 확보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