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했더라도 혼인 무효 가능”…대법 전합, 판례 변경

입력 2024-05-2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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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전제로 형성된 법률관계, 일거에 해결할 수단”

大法, 40년 만에 판례 변경…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 첫 전원합의체

민법 제809조 제2항 ‘인척간 혼인금지’
형법 328조 1항 친족상도례 적용 못해
민법상 가사채무에 연대책임도 못 물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까지”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된 후라도 혼인 무효를 요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혼인 관계를 전제로 수많은 법률관계가 형성돼 있어 혼인한 사실 자체의 무효를 확인받는 것이 관련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이라는 이유에서다.

40년 만의 판례 변경으로,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 처음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결과에 특히 관심이 모아졌다.

▲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주심 노태악 대법관)은 23일 혼인 무효의 확인 등을 청구한 사건에서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전합 판결을 선고, 종래 법리에 따라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자판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단순히 여자인 청구인이 혼인했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돼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는 청구인의 현재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이혼 신고로써 해소된 혼인 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한 확인이어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한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2001년 12월 혼인 신고를 해 법률상 부부였던 이 사건 혼인 무효 소송 원‧피고는 2004년 10월 이혼 조정이 성립되면서 이혼 신고를 마쳤다. 원고는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혼인에 관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 신고를 했다고 주장하며 혼인 무효 확인을 구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면 혼인 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 입장을 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무효인 혼인과 이혼은 법적 효과가 다르다”면서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반면, 혼인 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됐더라도 그 효력은 장래에 대해서만 발생하므로 이혼 전에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법원이 “이혼 후에도 혼인 관계가 무효임을 확인할 실익이 존재한다”며 종전 판례 태도를 변경하면서, 많은 권리 관계에서 법리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혼인이 무효라면 민법 제809조 제2항에 규정된 인척간 혼인금지 규정이나 형법 제328조 제1항에 규정된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되지 않게 된다. 또 혼인이 무효라면 민법 제832조에 규정된 일상 가사 채무에 대한 연대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된다.

대법원은 “가사소송법은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사망하여 혼인 관계가 해소된 경우 혼인관계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방법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며 “이 규정의 취지에 비춰 볼 때 이혼 후 제기된 혼인 무효 확인의 소가 과거의 법률관계라는 이유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협의 파양으로 양친자 관계가 해소된 이후 제기된 입양 무효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을 인정했다”며 “이 같은 판단은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된 이후 제기된 혼인 무효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을 판단할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이혼 후 혼인무효 확인 청구에 대해 포괄적 법률분쟁을 일거에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확인의 이익을 긍정했다”면서 “당사자의 신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을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등 국민의 법률생활과 관련된 분쟁을 실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당사자의 권리구제 방법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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