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공매도 감시시스템…“사전 억지·신속 탐지”
밸류업 ‘기업 자율성’ 방점 계속…지수 3분기 발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한국 자본시장의 질적 향상을 위해 좀비·부실기업을 조기 퇴출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해선 인센티브를 기반으로 한 기업의 자율적 노력에 방점을 찍겠다는 방향성도 재확인했다.
정 이사장은 24일 취임 100일을 맞아 서울 여의도 서울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업 밸류업과 자본시장 레벨업을 위한 핵심 전략’을 발표했다. 그는 “증시 시가총액은 10년간 60% 넘게 상승했지만, 지수 상승률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30%대”라며 “증시 양적 성장에도 주가 상승을 견인할 질적 성장은 미흡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00일은 이런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해소 필요성을 절감한 시간”이라며 “지금이라도 기업 밸류업 정책에 속도를 올리고 우리 국민의 공정한 자산운용 기회를 확대하는 한편, 우리 자본시장 새로운 먹거리를 찾음으로써 자본시장을 레벨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 이사장은 △기업 밸류업 지원 △공정한 자산운용 기회 확대 △자본시장 새 성장동력 확보 △자본시장 마케팅·소통 강화 등 4대 핵심 전략과 12개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자본시장 레벨업’을 위해 상장심사 관행을 대폭 개선하겠다고 예고했다.
정 이사장은 우량기업이 불합리한 심사 지연 없이 적시 상장하고, 부실기업은 조기 퇴출하는 진입·퇴출 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기업공개(IPO) 심사 지연, 상장폐지 장기화가 자본시장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그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이 2600개 정도 되는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다른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많다”며 “좀비기업이 시장에서 퇴출하지 않으면 투자자금이 계속 묶이게 된다. 퇴출하면 다른 대안적 투자로 전환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진입과 퇴출의 선순환은 자본시장 건전성 유지와 기업 밸류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필요하면 용역을 발주해 진행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 당국과 협의를 거쳐 원칙에 맞는 상장기업 퇴출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소개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금지된 공매도에 대해서는 불법 공매도 감시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거래소는 ‘공매도 중앙점검시스템’을 만들고, 기관투자자는 내부 잔고 관리 시스템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거래소의 중앙점검시스템 개발 소요 시간은 1년가량으로 예측했다.
정 이사장은 “불법 공매도 사전 억지와 사후 신속한 적발이 중앙점검 시스템의 핵심”이라며 “금융당국과 함께 감시시스템을 구축해 지능화하고 있는 불공정거래에 선제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거래소의 기술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될 것”이라며 “개발 기간을 단축하면 10개월 정도 걸리겠지만, 단축만이 능사는 아니며 안정적 탐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부연했다.
규제가 아닌 인센티브에 기반한 자율성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라는 거래소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올해 3분기 ‘KRX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고 지수 연계 상장지수펀드(ETF), 파생상품, 상장지수상품(ETP) 등 라인업을 확보할 예정이다.
정 이사장은 “밸류업은 기업 자체의 노력과 성공적 투자,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것”이라며 “마켓 프레셔(market pressure), 동종업계에서의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를 통해 밸류업을 자본시장 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이 밸류업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리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밸류업 지수 구성 기준과 발표 시점과 관련해선 “밸류업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만들 것이며, 9월 정도에는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자산운용사 등에서 관련 상품을 만들면 상품이 추종하는 인덱스에 포함된 기업들의 추가 투자수요로 작동하고, 전체적 기업가치 평가에도 도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밖에도 거래소는 사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미래사업본부’ 신설, 대체거래소(ATS) 출범에 따른 통합시장관리 체계 구축 등을 진행한다. 정 이사장은 “복수시장 체제에서도 투자자 보호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겠다”며 “인덱스, 데이터 등 성장성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본부를 신설해 수수료 중심 수익구조에서 탈피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