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38년 만에 바닥을 모르는 약세를 거듭하면서 국내 일학개미(일본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환차익을 노리고 일본 증시에 투자했다가 수익률이 부진한 상황에서 추가 매수로 물타기를 해야 할지, 이제라도 손을 털고 정리해야 할지 고민이다. 엔화는 지난달 28일 심리적저항선인 161엔을 돌파한지 사흘 만에 뉴욕 거래에서 달러당 161.750엔까지 또 급등했다.
2일 오후 3시 10분 기준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1달러당 161.69원에 거래되고 있다. 엔화가 달러 대비 161엔대로 추락한 것은 1986년 12월 이후 37년 6개월여 만에 최저치다. 최근 엔화 약세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하 시점을 지연하면서 가속화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5.5%)보다 5%포인트 이상 낮은 일본 중앙은행의 제로금리가 장기화하는 셈이다.
초엔저 현상으로 최근 신고가를 경신하던 일본 증시도 상승세가 둔화한 모습이다. 닛케이 평균 지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20% 가까이 올랐으나, 2분기부터 닛케이 평균 주가는 1.9%가량 하락했다. 닛케이 평균 주가 하락은 지난해 3분기 이후 처음이다. 엔저 지속에 대한 우려로 일본 증시도 침체되는 것이다. 일본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3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투자자들도 일본 증시에서 손을 터는 모습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일학개미가 지난달 일본 증시에서 2억1935만 달러를 매수, 2억5023달러를 매도하면서 1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순매도 우위를 보였다.
이 기간 개인들이 가장 많이 매도한 상품은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채 엔화 헤지’ ETF로, 4671만5730달러(약 645억 원) 규모를 팔아치웠다. 이 상품은 엔·달러 헤지가 돼 있지 않은 환노출형 상품으로 미국의 20년 이상 장기채에 투자해 금리 인하 시 환차익과 채권차익을 동시에 누릴 수 있어 최근 2년간 일학개미들이 대거 몰려든 바 있다.
반면 국내 엔화 예금 잔액은 폭증하고 있다. 장기간 주가 하락에도 개미들의 추가 매수세는 이어지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 엔화 예금 잔액은 6개월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엔화 예금 잔액은 1조2924억 엔으로 반년 만에 무려 15% 증가했다. 지난 4월 말 엔화 예금 잔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