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부실 사업장 정리 시급" vs "경기 상황 고려해야"
미국발(發)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린 가운데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을 예정대로 내년 초까지 끝내기로 했다. 최근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맞물려 부동산 PF 연착륙 대책에 대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불구,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부실 PF 정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7일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취임 직후 비공개로 주재한 거시·금융 전문가들과의 ‘금융리스크 점검 회의’서 부동산 PF 부실 정리를 놓고 참석자들간의 의견이 팽팽히 엇갈린 것으로 확인됐다.
회의에 참석한 A 전문가는 “최근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서울, 수도권에 국한된 얘기”라며 “지방의 경우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아 부실 PF를 빠르게 정리할 경우 중소 건설사들이 위험해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실제 PF 사업장에 대한 사업성 평가가 끝나면 부도가 나는 건설업체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면서 “업계 상황을 고려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B 전문가는 금융사의 부실 우려 문제를 우려했다.그는 “은행은 충당금을 워낙 많이 쌓아 문제가 크게 없을 것으로 보이나 지방은행이나 2금융권의 경우 사정이 다를 수 있다”면서 “PF 부실 정리가 필요하기는 하나 시행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각종 부작용을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속도 조절을 꺼낸 이유는 최근 불안한 경기 상황 때문이다.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감이 큰 데다 일촉즉발의 중동 정세 등 금융시장을 위협하는 복합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나치게 강공책을 펼 경우 중소사들이 큰 타격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내년 초까지 ‘속전속결’로 구조조정을 끝내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금융감독원은 전 금융권에 이달 9일까지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최종등급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 우려) 중 ‘유의’ 또는 ‘부실 우려’에 해당하는 사업장의 재구조화·정리 계획을 제출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재구조화·정리 이행 완료 예정일은 계획제출일로부터 6개월 이내로 설정해야 한다. 지침대로 이뤄질 경우 당초 계획대로 내년 2월까지는 부실 PF 정리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초로 경·공매에 들어가는 사업장은 추가 조치가 필요한 상황임을 감안해도 내년 4월까지 완료가 가능하다.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플랜을 옹호하는 입장도 다수였다. C 전문가는 “부동산 PF 부실이 시스템 리스크로 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한다. 워낙 충당금도 많이 쌓아놨고 당국에서도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당국에서 계속 유동성 공급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자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D 전문가도 “최근 서울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기준금리도 인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면서 PF 부실 정리를 미뤄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 것”이라면서 “하지만 부실 정리를 빠르게 해야 개발사업도 정상화되고, 그간 위축됐던 공급도 다시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이닌 만큼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이를 두고 충분한 논의도 했다”면서 “PF 정상화를 위한 연착륙 방안이 이미 착실하게 이행되고 있는 만큼 지금 속도조절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도 부동산 PF 구조조정이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는데 의견이 쏠린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동산 PF 구조조정은 애초에 총선 전에 하려던 것이 늦어진 것으로, 이미 속도 조절이 충분히 이뤄진 부분이 있다”면서 “여기서 또 지연되면 모럴 해저드 우려 등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부동산 PF 구조조정이 미뤄지게 되면 가계부채 문제와도 결국 연결이 되는 복잡한 문제"라며 "빠른 구조조정으로 시장을 빨리 정상화시켜 부동산 가격이 제대로 형성이 돼야 시장이 전체적으로 살아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방 건설사나 2금융권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나 모두를 끌어안고 갈수는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자체적인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