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칠레 와인'은 가성비로 통한다. 적당한 가격에 그럭저럭 마실 만한 정도라는 게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칠레 와인의 이미지다. 칠레 프리미엄 와인 브랜드 ‘에라주리즈(Errazuriz)’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가성비가 좋은 제품으로 통한다. 중저가 가격대에서 큰 실패 없이 마실 수 있는 브랜드인 셈이다.
에라주리즈 와인에 붙는 수식어 중 하나는 '대한항공 1등석 와인'이다. 항공사 1등석 와인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블라인드 테스트 등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품질이 보장됐다는 점을 가장 함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분 좋은 별명이다.
물론 이 수식어도 좋지만 대한항공 1등석 와인으로만 기억하기에는 에라주리즈의 브랜드 역사가 꽤 흥미롭다. 에라주리즈는 1870년 돈 막시미아노 에라주리즈가 칠레 중북부에 위치한 아콩카구아 밸리(Aconcagua Vally)에 포도밭을 일군 것에서 시작했다. 창업자 돈 막시미아노는 칠레 생산자로는 처음으로 프랑스를 방문해 직접 포도 품종을 선별해 들여와 포도밭을 조성했다고 한다.
아콩카구아 밸리는 안데스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자 남반구와 서반구를 통틀어 가장 높은 산이다. 그 덕에 에라주리즈 와인은 안데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마시며 자라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또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남극, 북쪽으로는 아타카마 사막이 있어 자연스럽게 유기농 포도를 재배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돼 있다. 이 지역에 많이 끼는 안개도 포도 품질을 높이는 요소다. 안개는 직사광선을 막아 와인의 풍미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안개는 '와인의 조미료'라고 불리기도 한다.
유서 깊은 에라주리즈 가문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칠레의 케네디가(家)'로 불린다. 외교관, 시인, 등을 비롯해 대통령도 4명이나 배출했다. 와인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선대에서부터 운영한 와이너리에 대한 애정이 깊어 5대 째 열정을 쏟고 있다.
현재 와이너리를 운영 중인 에두아르도 채드윅(Eduardo Chadwick) 회장이 공학을 전공해 와인 양조에 대한 기술적 연구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질학자를 초빙해 기후 조건과 토양에 따라 자랄 수 있는 포도 품종과 재배지 특성을 연구할 정도다. 대표적으로 대한항공 1등석 와인인 돈 막시미아노의 포도는 기온이 높은 곳에서 자라 다소 거칠고 투박한 스타일이다. 이런 노력으로 구역별로 각각 적합한 포도를 재배하면서 에라주리즈는 어떤 와이너리보다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꼽히기도 한다.
맛에 대한 취향은 제각각이지만, 에라주리즈라면 전통과 역사만으로도 한 번쯤 마셔볼 만한 와인 브랜드라는 생각이 든다. 대한항공 1등석 와인으로 잘 알려진 '돈 막시미아노 2021 빈티지'는 현재 GS25 편의점에서도 판매하고 있는 만큼 하늘 위에서 마시는 기분을 집에서도 손쉽게 느낄 수 있다.